그 소가 생각난다, 어릴 때 먹였던 소
사르비아 즙을 푼 듯 놀이 타는 강물 위로
두 뿔을 운전대 삼아 타고 건너오곤 했던,
큰누나 혼수 마련에 냅다 팔아먹어 버린,
하지만 이십 리 길을 터벅터벅 걸어와서
달밤에 대문 앞에서 움모― 하며 울던 소
<감상> 소는 냄새로 주인을 알아보고 냄새로 길을 지도로 삼는다. 송아지일 적부터 쇠죽 끓여 주고 키워온 일소는 정이 들대로 들었을 것이다. 소의 등에 타면 소는 집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간다. 노을을 등에 지고서 잘 간다. 그런데 큰누나 혼수 마련에 팔려간 소는 주인을 잊지 못해 이십 리 길을 걸어와서 대문 앞에서 운다. 지금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소, 움모-하며 울던 메아리만 남아있는 헛간, 풍경은 사라져도 추억은 오래 남는 법. 소가 누나를 시집보내게 했고, 나를 대학 공부까지 시켰으니. 그 추억들이 아직도 나를 먹여 살리고 있으니. <시인 손창기>
- 기자명 이종문
- 승인 2019.11.10 17:09
- 지면게재일 2019년 11월 11일 월요일
- 지면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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