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그리워
네 말을 들은 듯 살구가 떨어졌다
살구나무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툭 떨어지는 향기

살고 싶어 싸웠는데 죽지 못해 갈라섰는데
문득 그런 때가 있다고
전화기 너머
가라앉는 목소리가 강물을 적신다
너의 강가에 앉은 나도 억새 물결이다

지금 여기에 없는 당신이
뚜벅뚜벅 눈부시게 되살아오는 것
사랑과 증오를 넘어선 몸이 몸을 부르는
적막이

시큼했다
저녁 강물에 살내가 흘러다녔다




<감상> 죽지 못해 이별하였는데 왜 당신이 눈부시게 되살아오는 것일까. 살 부비며 사랑했던 당신의 향기가 남아 있듯, 사랑도 미움도 모두 정(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살구 빛은 꼭 살갗 같고, 떨어진 살구는 썩으면서도 향기를 풍기지 않는가. 잊었다고 생각한 당신이 문득 억새 물결처럼 내 가슴을 헤집고 다닌다. 떠나간 강은 건널 수 없고 살구를 삼킨 듯 시큼한 적막과 그리움의 살내만 저녁 강에 실려 가고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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