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오늘은 2020년 대입 수능이 있는 날이다. 먼저 오늘을 위해 치열한 시간을 보냈을 모든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격려의 인사를 드린다. 1994년에 수능이 도입된 이후 19차례의 대입제도 개편이 있었지만 입시 위주 교육은 여전하다. 프랑스의 한 일간지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고통스러운 교육’이라고 까지 표현한 바 있다. 언제쯤 우리나라 학생들은 입시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교육정책과 교육현장이 엇박자로 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 자체가 큰 위기다. 교육이란 국가와 사회발전의 근본 초석이기 때문에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다. 그런데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교육정책이 파도 위를 떠다니는 부표처럼 오락가락을 반복하고, 교육전문가가 아닌 정치인들에 의해 권의지계(權宜之計)식 교육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더 큰 문제는 국가적 교육비전과 정체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기존의 주입식·획일식 교육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 속에 세계 여러 나라들이 교육을 통해 국가의 미래전략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제3의 물결‘로 잘 알려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한국의 교육체계는 반복 작업하의 굴뚝경제체제에 기초한 형태로 발전되고, 현재 사라져 가는 산업체제의 시스템에 알맞도록 짜여 진 어긋난 교육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충고는 18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해 보인다.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 방법을 바꿔나가야 한다는데 모두 동의를 하고 있음에도 한국 교육은 왜 이렇게 바뀌지 않는 걸까?

가장 큰 원인은 대한민국 교육이 정치논리에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해방 후 학력을 통한 계층 이동성이 높았던 경험으로 교육사다리에 대한 큰 기대치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교육 문제는 가장 예민한 ‘역린’과도 같다. 특히 언제부터인지 교육현장이 정치화되고 있는 것도 모자라 편가르기식 정치적 이념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교육현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현 정권에서도 출범 이후 2년 6개월간 고교학점제, 수능 절대평가 도입 등 교육정책을 철회하거나 번복한 것이 10가지가 넘는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교육정책이 뒤집히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정부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마저 든다.

핀란드, 스웨덴 등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여러 나라의 교육개혁의 공통점은 뚜렷한 교육철학과 비전 그리고 일시에 대대적인 변화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단계적 개혁이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핀란드 공교육은 1968년 교육 개혁을 통해 기틀을 마련한 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다. 특히 치열한 입시경쟁, 사교육 시장의 번성, 학생들의 낮은 행복감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서 교육개혁에 성공한 홍콩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홍콩은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2000년부터 12년간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초·중·고 과정의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그 출발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교육개혁기구를 통해 개혁의 방향이 수요자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피히테(Johann Fichte·1762-1814)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저술된 『독일국민에게 고함』에서 “독일이 왜 패망했는가? 군대가 약해서가 아니다. 우리 독일인 모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다시 국가론을 재정립해야 한다. 내일로 미루지 말로 지금 당장 실천하자”고 했다. 올바른 교육을 통해 국가의 비전을 세울 수 있고 이를 성취하고 뒷받침할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고 역설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교육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산업구조 등 교육과 연동된 사회 전반을 바꿔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학생들의 적성과 진로에 맞춰 미래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그러기 위해 정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정시·수시와 같은 소모적 정치 논쟁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가 미래교육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여 교사, 학생, 정당, 학부모단체, 교장협의회 등 다양한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교육 비전과 국민의 합의(consensus)를 기반으로 교육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국가적 노력을 결집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의 최우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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