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이웃 나라와 사귀는데 방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대국으로서 소국을 섬길 수 있기로는 다만 인자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소국으로서 대국을 섬길 수 있기로는 오로지 지자일 뿐입니다. 대국으로서 소국을 섬기는 사람은 하늘의 뜻을 즐기는 자요, 소국으로서 대국을 섬기는 사람은 하늘의 뜻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자입니다. 하늘을 즐길 줄 아는 자는 천하를 보전하고 하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자는 한 나라를 보전할 수 있습니다.” 제 선왕은 천지개벽할만한 한 수를 기대했으나 맹자의 대답은 “상대국을 섬기라”는 평범한 조언이었다.

임진왜란 중 성종의 능 선릉과 중종의 능 정릉이 도굴 당했다. 두 왕의 관이 파헤쳐져 불태워졌고, 시신의 향방은 묘연했다. 조선이 왕과 백성들은 도굴범들을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했다. 임란이 끝난 후 일본이 화친을 내세워 국교재개를 요구해 오자 선조는 일본에 두 가지를 요구했다.

화친을 요구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국서와 왕릉을 파헤친 도굴범을 체포해 조선으로 압송하라는 것이었다. 일본이 이에야스의 국서와 도굴범 2명을 보내왔다. 도굴범들이 진범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선조의 어명을 받고 조사한 결과 도굴범들은 “조선 땅은 이번이 처음이며 능침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진범이 아닐 가능성이 커지자 조정 신하들의 의견은 둘로 갈라졌다.

가짜 도굴범들을 석방하고 화친 요구를 거절, 일본의 기만행위를 응징하자는 쪽과 가짜 도굴범일지라도 화친을 거절하면 다시 침략하겠다는 일본의 협박에 대한 대안이 없으니 도굴범들을 죽이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하고 화친하자는 쪽으로 팽팽히 맞섰다.

“화친을 잃게 되면 저들이 쳐들어와 크게는 종묘사직의 안위에 관계되고, 작게는 수십년 동안 병란이 계속 될 것이니 그 사이의 일은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선조는 현실론을 내세워 도굴범들을 처형, 그것으로 복수가 마무리 된 것으로 결론 짓고 화친 사절단을 일본에 보냈다. ‘지소미아’ 파기를 고집, 화를 자초하지 말고 선조의 현실론에서 한 수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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