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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상] 최재욱 시 '물의 기억 속으로'
[공동대상] 최재욱 시 '물의 기억 속으로'
  • 경북일보
  • 승인 2019년 11월 14일 21시 29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1월 15일 금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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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김제정作

물은
기억 속에 돌들을 키우고 있다
대야산 용추계곡을 지나 선유동을 거쳐
영강에 다다르면
깎인 돌들의 표정이 물위에 뜬다
못나고 못난 돌들만 뽑혀가는 영강에
못난 나도 조용히 서 볼만하다
돌이 돌을 품고 그 위로 잔잔히 울던 물살
거품으로 살을 내어주는 산란의 소리가 정겹다
살 껍질들이 만든 한세상
갈대숲과 모래 둔덕의 문명은
수면아래 돌들 표정 속 세상이다
얇은 입술에 달이 뜨고
조용한 숨결 마시며 내가 걷기 시작했지
온유의 젖꼭지를 입에 문 바다는 푸르게 출렁 인다
내 몸을 더듬고 나온 너의 기억
일부는 소실된 다리로 빠르게 둥근 전두엽에 강들을 정리하고
태양마저 기어오르지 못할 망가진 내일이 있다 해도
빈 몸으로 영강에 서보자
벗은 만큼 위로 해주는 물의 기억 속에서
내 눈 가려놓은 한세월과
새벽처럼 일어섰던 욕망의 덫에 걸린 발목들과
홀로 일어서지 못한 지게 같은 은둔의 삶 몇 개 씻고 나면
그제 서야 말 할 수 있다
빈손으로 왔길 망정이지 버리는데 급급할 뻔 했구나
언제부턴가 이곳 영강에서는
유연한 몸짓들이 물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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