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 은상

선생님께

십 년 전, 청소년상담센터의 두 번째 방 작은 격자 창문 너머로, 추위에 파래진 조각하늘에 시선을 주며 상담 받았던, 선생님과 제대로 눈도 못 맞추던 열일곱 살의 여고생을 기억하실는지요. 만약 지금까지 그 센터에 계신 게 아니라면, 선생님은 이 편지의 수신인이 못 될 수도 있겠어요. 물론 제가 이 편지를 다 쓰고 나서 우체통에 넣는다는 보장도 없긴 하지만요. 며칠 전 혼곤한 저녁잠에서 깨어나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다가 어떤 기사를 검색하게 됐는데 불현 듯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홑겹의 어둠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을 뚫고 섬광처럼 떠오른 기억에 저도 당황했어요. 암실 같은 무의식에서 단번에 또렷한 형체로 인화된 선생님의 형상은 뭐랄까,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무망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의 힘찬 파닥거림처럼 신선했어요. 깊은 흑암 위를 비추는 한 줄기 빛 같았어요. 아주 잠깐 설레기까지 했어요. 그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에 내게 찾아와준 감정이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답니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지 않으면 어렵게 찾아와준 좋은 감정이 곧 무망의 바다로 다시 달아나버릴 것 같았거든요. 지금 드디어, ‘결막 하 출혈’ 진단을 받은 빨간 눈으로 어둠 속에서 휴대폰 자판을 더듬더듬 찍어가며 편지를 써요.

십 년 전, 단 한 번, 선생님께 상담을 받으면서,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고, 가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고민이라고, 아마 울면서 말했을 거예요. 그때 선생님은 별게 다 고민이라는 듯 아주 잠깐 희미하게 웃다가, 상담자의 자세가 이러면 안 된다는 스스로 일깨운 경각심 때문인지 곧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셨어요. 그런데 내게는 선생님이 바꾼 표정조차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매끄럽고 건강한 피부를 고민으로 꺼내놓는, 복에 겨운 한심한 여고생을 바라보는 표현임을 바로 알아차렸어요. 왜 아니겠어요. 누군들 그렇지 않겠어요. 그때 선생님은 잠깐 희미하게 웃다가 차분하고도 다정하게 말씀하셨어요. 사람의 피부색은 멜라닌 색소의 많고 적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거란다. 내 감기가 남의 죽음보다 더 고통인 법이니까, 네 고민을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희주에겐 정말 중요한 문제겠지. 그런데 말이야, 언젠가 내가 상담해준 학생 중에 백색증을 앓는 친구가 있었어. 생각해보니 희주랑 나이가 같구나. 그 친구는 온통 하얘서 피부는 물론이고 속눈썹까지 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았단다. 이목구비는 정말 예뻤는데 안타까웠어. 상담 자리에서도 그 애는 고개를 잘 들지 못했어. 어쩌다 눈이 마주칠 때면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거든. 너무 하얘서 쌀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은 자기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게 고통이었나 봐. 이 세상 누군가는 멜라닌 색소가 하나도 없어서 숨어살고 있단다. 네 피부는 멜라닌이 조금 많을 뿐이야.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건강한 피부를 갖고 있는 셈이지. 선생님은 네 가무잡잡한 피부가 정말 부럽다. 나중에 스무 살이 되면 화장으로 커버해보렴. 정말 예쁠 것 같다……라고 격려하셨지요. 그때 저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내 고민 따위는 잊어버리고 백색증을 앓는다는, 속눈썹이 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다는 그 친구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비닐처럼 투명한 피부 아래로 붉은 핏줄과 푸른 힘줄이 그대로 보일 텐데, 화가 났을 때 한껏 팽창한 혈관이나 냉담해졌을 때 파랗게 굳어버린 근육을 다 들켜버릴 텐데, 그 애는 어쩌지. 센터의 작은 창틀에 갇힌 조각하늘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 친구의 얼굴 아래에도, 푸른 혈관을 타고 슬픔의 강이 흐르고 있을 거란 엉뚱한 상상에 붙들렸어요. 그날, 그 순간, 선생님을 앞에 두고 흘깃 옆으로 바라본 파란색의 조각하늘이 손에 잡힐 듯 아직도 선명해요. 너무 짙고 파래서 더 추워 보였던 겨울 하늘과 위태롭게 반짝이던 겨울 해의 흰빛 광채도, 조각하늘이 제 스스로 안으로 삼켜버린 슬픔의 눈물도, 푸르른 몸 깊숙이 감춰버린 이야기까지도.

며칠 전, 낮잠에서 깨어 핸드폰으로 검색했던 인터넷 기사는 바로 백색증을 앓는 알비노에 관한 거였어요. 선생님은 온몸이 하얀 사슴, 온몸이 하얀 고라니, 온몸이 하얀 원숭이, 온몸이 하얀 참새를 보신 적 있나요? 눈부시게 하얀 사슴 사진에 놀라 기사를 열었던 것 같아요. 유전자 돌연변이인 알비노는 멜라닌 색소 생성이 되지 않아 생겨난다고 돼있었어요. 다른 건 모두 정상인데 효소 하나가 제대로 기능을 못해서 멜라닌이 만들어지지 않고 결국은 티 하나 없는 하얀 몸의 알비노가 된다는 거예요. 더 웃긴 건, 알비노를 만드는 유전자는 열성이래요. 열성이란 의미는 부모 양쪽 모두로부터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아야 알비노가 된다는 뜻인 거죠. 참 지독하게 운이 없는 경우겠죠. 부모 양쪽의 두 염색체 중 하나에만 정상적인 유전자가 있어도 열성 유전자 특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제가 괜히 유식한 척했죠. 기사를 그대로 옮겨 쓴 거예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생물 시간에 유전법칙을 배운 적이 있어서 얼추 뜻은 알 것 같아요. 알비노가 근친 교배한 동물에서 태어나는 이유도 열성이기 때문이래요. 은밀하게 잠복해 있던 열성들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떨며 강렬하게 만나는 거죠. 알비노는 온통 하얀색이어서 천적들로부터 몸을 숨기기가 어렵고 사냥 중에도 먹잇감이 접근을 쉽게 알아채 굶기 일쑤고, 무리로부터 추방당하기도 쉽고, 짝짓기에도 불리하대요. 게다가 알비노는 눈동자까지도 붉은색을 띤대요. 홍채와 망막 상피에 멜라닌이 없어서 눈동자의 혈관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래요. 선생님, 정말 끔찍하지 않나요? 신화 속 동물처럼 신성시되는 하얀 사슴이 실은 멜라닌 색소 하나 없는 열성 덩어리 개체라고 하니, 갑자기 진한 연민이 느껴졌어요.

알비노 기사를 읽다가, 백색증을 가진 그 친구는 지금껏 잘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어요. 천적이 득실대는 무서운 야생의 세계에서 몸은 잘 숨기고 있는지, 굶지 않을 만큼 먹이는 확보하고 있는지, 무리로부터 추방당하지는 않았는지, 무사히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 짝을 이루었는지, 갑자기 모든 게 궁금해졌어요. 스물일곱이 됐을 그 애를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어요. 이제 열망 따윈 내 인생에 다시 생겨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단지 멜라닌 색소가 부족했을 뿐인데, 단지 효소 하나가 기능을 못했을 뿐인데, 한 인생이, 한 역사가, 한 세계가, 한 우주가 흔들려야 하다니요. 차라리 그 친구가 엄마 뱃속에 열성 태아로 잉태되었을 때 거품처럼 사라졌다면, 부모가 가진 스물세 쌍의 염색체 중 알비노 열성 유전자가 짝을 이룰 일은 없었을 테고 열성은 잠복조차 못하고 영원히 파묻혔을 테죠. 그랬다면 한 인생이, 한 역사가, 한 세계가, 한 우주가 흔들리는 재난은 없지 않았을까 상상해봤어요. 내 상상이 정당하다면, 내일 오전에 내가 감행하려는 행동은 그다지 큰 죄가 안 될 것도 같아 조금은 위로가 돼요.

선생님도 잠깐 상담했던 그 친구의 안부를 지금껏 알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얼굴도 모르는 그 친구와 내가 닿을 수 있는 인연의 고리는 선생님밖에 없으니까요. 지나가는 행인 중 아무나 한 사람을 골라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인지 추적해보면 나와 행인 사이에는 평균 세 명이 존재한다고 들었어요. 쇼셜 네트워크로 단단히 묶인 우리나라 정보통신망을 자랑하는 기사였는데, 문득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구나 싶어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론 위안이 됐어요.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첫 번째 동심원의 사람들, 그리고 덜 가까운 두 번째 동심원의 사람들, 그리고 결코 가깝다고 할 수 없는 세 번째 동심원의 사람들,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한 네 번째 동심원의 사람들…….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행인이 내게 큰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궤변을 믿고 싶었어요. 백색증을 앓는 알비노, 그 친구도 과연 그 말을 믿고 살아갈까요?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구나, 섬뜩해 하면서도 가끔 위안을 얻으며 살고 있을까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빠에게 감사할 수 있었던 단 한순간이 있다면 십 년 전 바로 그때,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아빠로부터 멜라닌 색소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던 그때, 그 순간밖에 없어요. 사실은, 아빠를 쏙 빼닮아서 가무잡잡한 내 얼굴을 엄마는 유독 싫어했거든요. 마치 아빠 혼자서 날 낳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에요. 고객을 만나러 나가기 위해 연신 하얀 얼굴에 더 하얀 분을 바르면서 엄마는 매번 그렇게 말했어요. 제 아비 닮아 밝은 기라곤 없는 음침한 상판하고는! 저러니 친구 하나 없지!

다량의 멜라닌 색소를 물려준 아빠는 이 년 전에야 겨우 죽었어요. 십오 년간 술만 마신 사람이라면 까맣게 타들어가서 숯이라도 돼야 마땅할 텐데 이상하게 시신이 된 아빠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얬어요. 마치 평생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어깨에 달린 날개를 숨긴 채로 천적을 피해 살아온 천사알비노 같았죠. 모두들 죽은 아빠의 얼굴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어요. 저 숯이 된 상판 봐라, 평생 술에 몸을 담그고 살더니만, 쯧쯧쯧, 이라고 비난해야 마땅한데 얼굴이 쌀가루를 뿌린 듯 하얬으니까요. 아빠가 술을 마시고 있을 때면 늘 상상하곤 했거든요. 아빠가 죽는 순간의 얼굴을요.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는 남자를 선생님은 상상해보셨나요? 물론 그런 사람이나 그런 사람의 아들 혹은 딸을 수없이 상담해 보셨겠죠. 그러니 잘 아실 테죠, 충분히, 머리로는.

아빠의 장례식에선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어요. 아빠, 죽어버린 중년의 알비노를 위해 아무도 울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내일 아침이면 어미의 뜻에 따라 강제로 사라져야 할 내 뱃속 생명, 외할아버지의 열성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태아를 위해선 누가 울어줄까요? 선생님, 어쩌면 이 편지는 단 한 사람에게 보내는 한 생명의 사전 부고장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빠의 부재를 가장 기뻐해야 할 엄마는 오히려 허탈해했어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라도 남편이 떠난 빈자리는 남는다거나 이제 과부가 된 여자로서의 회한은 어쩔 수 없다거나 그런 상투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던 게 확실해요.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망이 성취되었을 때 느끼는 몽롱하고 아찔한 어지러움을 난 엄마에게서 간파했으니까요. 오직 한 가지 열망만 독하게 품고 삶을 지탱해왔는데, 갑자기 열망이 이루어진 뒤의 허무함이라 하면 맞을 거예요. 엄마가 회사에서 꿈에 그리던 보험 여왕이 됐을 때도 얼추 비슷한 표정이었거든요. 엄마가 고객을 붙들기 위해 하얀 분칠이 점점 더 진해지고 과도한 아부와 애교를 떨 때는 생의 확고한 의지가 얼굴에 배어 있었어요. 대입을 준비하는 고3 학생처럼 전투적이었죠. 그래서 아빠가 죽은 뒤의 차별화된 표정을 쉽게 간파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원양어선을 타는 남동생은 아빠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어요, 아니 참석하지 않았어요. 사실, 아빠가 위독해졌을 때 휴가 기간이었지만 서둘러 배를 타고 다시 먼 바다로 나가버렸으니까요. 아빠가 돌아가셨어, 라고 전했지만 전화기 너머,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알 수 없지요. 베링 해협에서 조업 중인 거대한 배 위에서 서쪽 하늘에 석양이 물들 때면 혹 아주 잠깐이라도 아빠를 생각했을지…….

아빠가 처음부터 엄마를 때린 건 아니었어요. 남자구실도 못 하면서,라는 말이 엄마 입에서 선언된 동시에 아빠의 구타는 시작됐어요. 제가 초등학교 사학년 때였으니까 잘못 들은 건 아니에요. 엄마는 딱 한 번 그 말을 했을 뿐인데 술만 마시면 그 말이 아빠 귀엔 녹음테이프를 재생시킨 것처럼 반복해서 들리는 듯했어요. 취중에 엄마 얼굴만 보면 분노했죠.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타르를 져 나르던 아빠가 삼층 남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서 허리를 크게 다쳤는데, 디스크가 파열돼 다시는 일을 할 수 없게 됐어요.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급속하게 무기력해졌어요. 이내 침묵의 동굴로 들어가 버렸고 엄마가 보험 왕이 된 날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아주 가끔은 기적처럼 얼굴에 잠깐 생기가 돌아올 때도 있었어요. 거실 천장에 붙은 형광등 전구가 나가버린 날이었는데 아빠 외엔 아무도 전구를 씌우고 있는 유리 곽을 떼 낼 수 없었죠. 책상 의자를 갖다 놓고 올라선 아빠는 유리 곽을 떼 내느라 얼굴이 빨개졌고, 몇 번을 더 오르내리며 세 개의 전구를 하나씩 갈아 끼웠는데 이마에 살짝 땀이 배기도 했어요. 그날 아빠는 오랜만에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어두운 동굴에서 나와 햇볕을 쬐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어느 날, 술에 취해 거실에 잠든 아빠를 보면서 나는 바보처럼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어요. 거실 형광등을 켰다가 끄고, 켰다가 끄고, 또 켰다가 끄고…… 그래야 아빠가 할 일이 또 생길 테니까요. 엄마가 현관 키를 누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점등과 점멸의 무한 반복을 멈췄어요.

엄마의 귀가는 점점 늦어졌어요. 술에 취한 남편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선 잠든 후에 들어와야 했겠죠. 엄마는 아빠의 손찌검에 처음엔 거세게 저항했고 반복성에 분노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무망해했고 점점 집요해지는 태도에 치를 떨며 아빠가 죽기만을 간절히 소원했어요. 저 인간 죽는 날이 곧 내 생일이다, 험한 말을 습관처럼 달고 다녔어요. 그리곤 늘 고객, 이라고 말하는 남자들과 함께 밖으로 떠돌았어요. 즉석 김 세트 한 봉지를 사다 놓고 참치를 듬뿍 넣어 김치찌개 한 솥을 끓여놓고는 삼사일은 살림을 돌아보지 않았어요. 김치찌개가 바닥나야만 엄마가 돌아올 것 같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던 기억이 나요. 엄마의 행동 추이는 마치 말기 암을 선고받은 사람 같았어요. 생이 자신을 속인다는 배반감에 저항하고 분노했지만 곧 무망에 빠지고 그리곤 생에 집착하며 하루하루를 추억으로 남기려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하긴 아빠랑 부부로 산다는 게 말기 암에 걸린 것보다 더 절망적이었겠죠.

알비노의 눈동자가 붉은색인 것은 홍채나 망막 상피에 있어야 할 멜라닌 색소가 없어 눈동자의 혈관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래요. 아! 이건 앞에서도 쓴 내용이죠. 크고 두려운 일을 눈앞에 둔 사람의 급성 건망증이라 해둘게요. 선생님은 이해해 주실 테죠. 내 감기가 남의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아는 분이니까요. 그때, 인터넷 기사의 두 번째 사진에는 눈부시게 하얀 털로 뒤덮인 채 타는 듯 빨간 눈을 동그랗게 뜬, 포식자가 나타날까 두려워하는 원숭이가 보였어요. 생애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알비노 원숭이이라니, 숨이 턱 막혔어요. 멜라닌 색소 하나 부족하다고 평생 빨간 눈과 하얀 몸으로 산다는 건 너무 독한 형벌이 아닐까 싶었어요. 빨간 눈을 뜨고 주변을 경계하며 잔뜩 웅크린 백색 원숭이를 보는 순간, 아빠가 평생 빨간 눈으로 살았던 걸 기억해냈어요. 술에 잠겼을 때의 폭력성과 술에서 깨어났을 때의 죄책감, 극명하게 대조되는 아빠의 두 가지 모습을 바라보는 감정의 딜레마, 나는 거기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후퇴하지도 못한 채,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었어요. 죽여 버리고 싶은데 뜨거운 연민으로 죽일 수 없는 딜레마…… 술 때문에 아빠는 항상 눈이 빨갛게 충혈 돼 있었어요. 아빠는 순종 알비노였을까요? 마치 순백색 털에 눈이 빨간 원숭이처럼.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내 눈도 빨개요. 각막의 혈관이 터졌는지 흰자위가 단풍 든 것처럼 빨개요. 안과에 가니 의사는 무심하게 결막 하 출혈이라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냐고 물었어요. 스트레스요? 그렇게 답해놓고 나니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어요. 한 생명을 사라지게 하려는 무시무시한 음모도 간단하게 스트레스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사항인지 오히려 되묻고 싶었어요. 의사는 내게 절대 무리하지 말고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고 앵무새처럼 조언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문득 기발한 상상이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지워버린 뱃속 생명을 위해 울고 울다가 눈이 빨개진 엄마라면 그럴듯한 설정 아닐까요? 알비노 엄마가 순종 알비노 자식을 미리 지워버리는 일…… 한 생애가, 한 세계가, 한 우주가 흔들리는 것을 막는 일…… 그렇다면 덜 죄스럽지 않을까 하구요. 생애 전부를 빨간 눈을 뜨고 주변을 경계하며 잔뜩 웅크린 채 들키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미리 지워주는 것도 엄마로서 딱히 나쁜 것만은 아닐 거란 무서운 생각을 했어요. 내일 예약해놓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쿵 뛰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싶어요.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결막 하 출혈이 다 낫기 전에, 지워버린 뱃속 생명 때문에 울고 울다가 눈이 빨개진 엄마라고 착각될 수 있을 때, 빨리 산부인과로 가야겠어요. 눈마저 멀쩡하다면 인간이 아닐 테니까요.

엄마의 절망은 남동생에게 사고가 났던 날, 절정에 달했어요. 아빠가 술기운을 빌어 격분해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푹 꺾고 당신의 휘하에 복종을 맹세한다는 비굴한 자세를 취할 줄 알았지만, 그래서 폭력에서 상당 부분 빗겨날 수 있었지만, 일찍 사춘기가 찾아온 남동생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당신에게는 죽어도 복종할 수 없다는 당당한 자세를 취해, 매번 맨몸으로 온전한 폭력을 당해야만 했어요. 남동생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한 학기도 못 채우고 가출을 반복했어요. 빈 집에 모여 술을 나눠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고 자정의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를 달리며 광란의 밤을 보내곤 했어요. 그날도 친구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타다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는 트럭에 치였는데,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트럭에서 튕겨져 나온 동생이 마치 뻥튀기 기계에서 튀어나온 튀밥 같았대요. 갈비뼈가 거의 다 부러진 남동생은 중환자실에서 여섯 달을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했어요. 생명줄을 겨우 붙잡고 세상으로 다시 걸어 나간 건 기적이었죠. 바람처럼 거리를 떠돌다 먼 세상으로 나가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엄마도 함께 집을 나갔어요. 동생이 여섯 달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도 아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주잔을 탐욕스럽게 빨고 있었으니까요. 처음부터 당신에게 가족은 없었다는 듯이. 엄마는 보험 여왕 자리를 빼앗기면서까지 남동생 곁을 지켰는데, 엄마가 집에 없는 사이 아빠는 오히려 자유로워 보였거든요. 그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죠. 히죽히죽 웃으며 술잔을 빨았죠. 술은 아빠의 혈관을 잠식했고 가족관계를 잠식했어요. 우린 모두 절망에 취해서 비틀거렸어요. 바로 서려고 해도 취한 것처럼 가족들은 자꾸자꾸 넘어졌어요.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벼댈 수 있다고 엄마는 늘 푸념처럼 말하곤 했는데, 기댈 데라곤 추호도 없는 남편을 향한 원망이었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생의 반복되는 가출이나 엄마의 점점 진해지는 화장 같은 그 반어법적 행동들은, 적어도 뒤에 존재하는 아빠의 사랑을 전제로 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난 엄마나 남동생이 지독하게 부러웠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두 사람에겐 세상을 부유해 다닐 충분한 명분이 있었으니까요. 아빠가 죽은 후 엄마와 동생이 떠난 집에 나만 남았어요.

사실은 나도 멀리, 아주 멀리, 새벽날개를 치며 사람들이 모르는 곳으로 떠나려 했어요. 신조차 나를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더 이상 불행과 불행이 근친교배 되지 않는 평안의 땅으로. 하지만 한 여자의 자궁 속에서 술과 바람이 근친교배로 만나 단단히 결합된 ‘나’라는 개체는 열성인 하얀 몸을 숨길 수 없었어요. 너무 흰 몸을, 너무 붉은 눈을 도저히 감출 수 없었어요. 흰 몸과 붉은 눈을 단번에 알아보고 천적인 불행이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녔으니까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죠. 며칠 전엔 아빠가 했던 것처럼 나도 히죽히죽 웃으며 소주를 마셔볼까도 생각했어요. 천적인 불행이 닥칠 때면 아빠가 했던 방어책의 효능을 시험해보고 싶었거든요. 장차 태어나면 백 퍼센트 순종 알비노가 될 뱃속 생명을 지우고 돌아와 만약 아빠처럼 소주를 마신다면 내장으로부터 진하고 충만한 슬픔이 목구멍으로 파도처럼 넘실대며 넘어오겠지요. 차라리 파도에 목이 터지고 눈이 터지고 몸이 터져버리면 좋겠단 열망이 마음을 채웠어요.

십 년 전,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청소년상담센터 연락처를 보고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안내해주는 대로 센터를 찾아갔지요. 상담실로 들어가서도 선생님께 바쁘다고 둘러대며 이십여 분 짧은 상담을 받았던 거 혹 기억나세요? 그 이십여 분 동안 창틀에 갇힌 조각하늘을 올려다보며 지금 선생님께, 말하자, 말하지 말자, 말하자, 말하지 말자, 내 속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힘들었어요. 백색증 친구 얘길 다 듣고 난 후 상담 말미에 이르러서야 제가 아는 누구 말하듯 중증 알코올 중독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를 물었어요. 선생님은 한참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답해주셨어요. 모른 체해 주셨을 뿐, 아마 그때 선생님은 내가 털어놓고 싶었던 진짜 고민이 뭔지 눈치채셨을 거라 확신해요. 일요일 아침에 잠깐 술에서 깬 아빠에게 용기 내서 선생님께 들은 대로 조심스레 치료를 권했어요. 부끄러움에 타들어가는 것 같은 아빠의 눈을 본 이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요.

딱히 남자가 필요했던 건 아니에요. 난 그저 내 진짜 고민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을 뿐이에요. 여러 명의 남자친구를 만났지만 그들은 모두 내 말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처음엔 듣는 시늉을 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욕구 때문인 걸 금방 드러내곤 했어요. 이 사람만은 아닐 거야, 이 사람만은 다를 거야, 내게 주문을 걸며 남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어요. 반복은 습관으로 몸에 배서 결국 타성으로 변했어요. 어떨 땐 나도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즐기려는 건 아닐까 자문하곤 했지요. 공부도 안 하면서 습관적으로 오가던 학원에서 만난 친구, 보정된 프로필 사진을 보고 페이스북 파도타기로 말을 걸어온 친구, 일진의 똘마니였지만 영웅처럼 굴었던 친구 등 학창시절부터 줄곤 만나온 다양한 남자들, 그가 누구건 어떤 사람이건 난 금방 사랑에 빠지곤 했어요. 한 번은 인터넷 채팅으로 남자를 만난 적도 있어요. 남부지방 소도시에 사는 남학생이었는데 그와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사흘 만에 사랑에 빠졌고 그의 주소로 초콜릿과 사탕을 보내기도 했어요. 내가 말을 걸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 있다는 게 달콤하고 따뜻했어요. 친구 하나 없는 음침한 상판이 아니라 예쁜 얼굴이라고 말해주는 누군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위태롭지만, 얼마간은 누군가에게 최고의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만났던 남자 중에 꽤 괜찮은 친구도 있었어요. 현우는 너무 평범해서 딱히 해줄 게 없었어요. 그래서 적응을 못 했던 것 같아요.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고, 건강 챙기라고 염려해주고, 옷 따뜻하게 입으라고 다독여주던 그 애 이름이 현우예요. 현우랑 주말에 만나면 함께 김밥과 떡볶이를 사 먹고 명동을 같이 걷곤 했는데, 참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현우는 공부도 꽤 해서 대학도 다니고 가정도 화목하다고 들었어요. 심지어 가족여행도 자주 한다고 했어요. 가족여행이라니, 그런 비현실적인 단어를 난 체험해 본 적이 없거든요. 우주 밖에나 존재하는 외계어로 들렸어요. 도시 최고의 호텔 꼭대기 수영장에서 아빠와 새벽 수영을 했다거나, 국제적인 놀이동산에서 4D 열차를 타며 소리를 질렀다거나,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는데 아빠가 와인 한 잔을 건넸다거나…… 현우 가족의 싱가포르 여행담을 들으며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봤어요. 아빠는 와인을 병째 마셔서 빨간 눈으로 주저앉고 엄마는 다른 남자와 열차를 타며 기쁨의 소리를 질러대고 남동생은 호텔 꼭대기 수영장에서 뛰어내릴 것 같은, 그래서 결국 나 혼자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연상의 끝은 역시 낙담이었어요. 내가 현우에게 해 줄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앤 완벽하게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내가 여기 있다고 존재를 증명할 틈이 없었어요. 뭐랄까, 현우를 눈앞에 두고도 소외감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현우의 생일을 기다렸어요. 선물이라도 줄 수 있으니까요.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산 스웨터랑 정성을 담아 쓴 손 편지, 그리고 사탕과 초콜릿, 따뜻한 귀마개, 선물을 잔뜩 준비해서 명동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런데 현우는 가족끼리 외식하기로 약속했다며 다음 날 만나자고 해 날 무척 속상하게 만들었어요. 난 몰래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아파트 입구에 숨어 현우 가족을 기다렸어요. 현우 가족이 궁금했거든요. 경쟁자의 사생활을 염탐하듯 쿵쿵거리는 심장을 안고 기다렸어요. 예상대로 현우 가족은 모두 정상인이었어요. 눈동자가 까만 아빠와 화장기 옅은 엄마, 순한 인상의 여동생을 질투 어린 눈으로 바라봤어요. 현우와 여동생이 뭐라고 말하자 너털웃음을 웃어젖히는 현우 아빠의 얼굴과 눈웃음을 담은 현우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역시 현우에겐 내가 해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절감했어요. 미소가 넘쳐나는 그 가족은 모두 건강해 보였으니까요. 다음 날 현우에게 바로 이별을 통보했어요.

가여운 필우와 만난 건 해 줄 게 많았기 때문일까요. 24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처음 필우를 만났어요. 손님으로 온 필우는 하얀 얼굴에 추워 보였고 한눈에도 겨울 점퍼가 부실해 보였고 충혈된 눈이 슬퍼 보였고 잔뜩 웅크린 등이 굽어 있었어요. 모두 얼마죠? 컵라면과 냉동만두를 계산대에 올려놓으며 필우가 피곤한 듯 물었을 때 호감이 생겼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필우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필우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냉동만두 비닐을 벗겨 두 알을 꺼내 컵라면에 넣으려 했어요. 잠깐만요, 그렇게 먹으면 안 돼요. 배탈 나요. 내가 따뜻하게 데워줄게요. 냉동만두를 레인지에 데워 집에서 갖다 놓은 접시에 예쁘게 담아 줬어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을 것 같은 배려에 어색해하는 눈빛을 느끼며 뿌듯했어요. 유리문 밖을 흘깃거리며 허겁지겁 컵라면과 냉동만두를 먹어치우는 필우에게 따뜻한 커피까지 타서 챙겨줬어요. 충혈된 필우의 눈에 고마움과 부끄러움이 함께 담겨 있는 걸 보는데 행복했어요. 다음 날 편의점으로 온 필우는 부끄러운 듯 몇 시에 일이 끝나는지 물었어요. 밤 열한 시에 포장마차에 함께 앉아 뜨거운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서 필우가 결심한 듯 말했어요. 우리, 사귈래요? 나보다 한 살 연하고 부모님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얼마 전에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는 이력을 알게 됐을 때는 묘한 설렘을 느꼈어요. 필우도 나처럼 혼자 남은 거였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골집을 정리한 돈으로 원룸을 얻어 살고 있던 필우는 고등학교 졸업 후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어깨를 다쳐 쉬고 있다고 했어요. 필우가 더 좋아졌어요.

같이 술을 먹고 이유 없이 절규하다가 인사불성으로 필우의 원룸으로 가서 둘의 몸을 나눈 건 며칠 뒤였어요. 뜨거운 정사가 아니라 필사적인 정사였어요. 부르르 몸을 떠는 필우를 받아들이며 이 애가 떠는 건 육체의 쾌감 때문이 아니라 외로움 때문일 거라 생각한 건 왜일까요?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필우를 안았어요. 서로의 몸을 필사적으로 탐닉했어요. 그날 밤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말자고 처절하게 몸으로 약속했던 것 같아요.

십 년 전 그날,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끝까지 말하지 못한 게 있어요. 전 단지 가무잡잡한 피부가 싫었던 게 아니라 아빠와 닮은 사실이 싫었던 거예요. 아빠와 닮은 사실이 싫다는 고민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백색증 친구의 고민에 비하면 너무 유치해 보였거든요. 그래요, 선생님. 때로는 큰 아픔이 아주 작아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큰 아픔이라고 여기는 나 자신이 비겁해 보이거나 한심하게 여겨지지요. 힘들게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필우를 먹이고 입히고 따뜻하게 재워주면서도 내 수고는 아주 작아 보였어요. 필우를 돕는다고 생각하면 내 아픔까지도 축소되는 것 같았거든요.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아닌 일에 툭툭 분노를 표출하다가 가끔 폭력도 쓰기 시작한 필우를 떠나지 못한 건 그 애 옆에 있으면 내 아픔이 작아 보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읽고 싶지 않았지만 인터넷 기사에는 아프리카에서 가해지는 인간 알비노에 대한 폭력 현장도 실려 있었어요. 인간 알비노는 종족과 상관없이 태어나지만,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에서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데 알비노가 살해되는 사례도 적지 않대요. 인간 알비노의 팔과 다리, 생식기 등을 제물로 바치면 운이 잘 풀린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 알비노의 신체를 먹으면 에이즈가 낫는다는 끔찍한 미신도 있대요. 알비노를 납치하거나 살해하고 신체를 잘라 매매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알비노들은 아예 보호소로 들어가 경찰의 보호를 받기도 한대요. 원치 않은 열성유전자로 온갖 고통을 겪는 알비노가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어요. 팔과 다리가 잘리고, 생식기가 잘리고, 그러고도 남은 몸통마저 잘리는 끔찍한 세상이 두렵고 무서워요. 내일 아침 예약해 둔 수술 때문인지, 결막 하 출혈 증상 때문인지, 자꾸 눈앞에 환영을 보는 것 같아요. 온통 의족과 의수와 의안으로 만들어진 몸이 어른거리고 속눈썹에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인간 알비노의 하얀 얼굴이 둥둥 떠다녀요. 한 달 전, 퇴근해서 필우의 원룸으로 갔는데 필우가 방을 빼고 사라져버렸어요. 그 전날 필우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거든요.

선생님, 선생님은 혹 알비노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언젠가 선생님을 우연하게라도 다시 한 번 만난다면 꼭 얘기하고 싶어요. 열성 덩어리 알비노에 대해…… 고통받는 알비노에 대해…… 죽어가는 알비노에 대해…… 그냥 속눈썹에 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백색증이 아니라 팔과 다리와 생식기가 잘리고, 살해당하고, 제물로 바쳐지는 그런 백색증에 대해, 다음 세대에 반드시 유전되고야 마는 그 질기고 독한 열성에 대해 말이에요. 가무잡잡한 피부가 걱정이란 거짓말 따윈 버리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이젠 선생님께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말한 백색증을 앓는다는 그 친구,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그 친구를 십 년 만에 기억해냈듯, 사람들도 아주 가끔은, 십 년에 한 번쯤은, 문득 인간 알비노인 내가 존재한다는 걸 기억해줄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십 년 만에 한 번 쯤 기억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소셜 네트워크 네 번째 동심원 줄에 서 있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때로는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선생님도 내 편지의 수신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조금은 위로가 돼요. 선생님을 만난다면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해 주실까요? 온몸이 하얀 사슴도, 온몸이 하얀 고라니도, 온몸이 하얀 원숭이도, 온몸이 하얀 참새까지도, 천적이 가득한 위험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자기의 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선생님, 선생님이 기억나서 다행이에요. 십 년 전, 센터 상담실을 나오는 내게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씀해주셨어요. 희주야, 정말로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 때 언제든 다시 찾아오렴.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을게. 이것 하나만 꼭 기억하렴. 사람은 생명을 부여받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의 세계이고 우주란다. 백색증이건 알코올중독이건 상관없이……. 선생님의 그 말이 알비노에게 얼마나 두려운 말인지, 그런가 하면 또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선생님은 아마 모르실 거예요. 언젠가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내게 뭐라고 말씀해 주실까요? 너무 두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 말이 지금 너무 너무 듣고 싶어요.

2009년 겨울 선생님께 단 한 번 상담 받았던 김희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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