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쯤에서 잘못한 일로 발갛게 익어 가는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사과해야 할 일들과 사과 받을 주소들이 많다
세시풍속이 그렇듯 포장되고 배달되는 사과
두 손으로 쪼개기는 힘이 들어서 깎아야겠다
길에 서서 대충 받은 사과까지 동그랗게 깎아야겠다
잘못한 일이 많아서 풍년이 들었다는 사과가
북상 중이라는데
부담 없게 사과할 때는 한 상자를
해묵은 사과를 할 때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식목일 전에 보내는 것도 좋은 사과지만
추신으로 단맛을 적어 보내면 더 좋은 사과
꽃에서 나왔으니까
꽃을 버린 기억으로 스스로 붉어지는 사과
사과는 사과를 갖고 하는 것도
입이나 손바닥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사과하고 싶다면
깊숙이 들어 있는 멍을 풀어 주고 싶다면
용서받을 때까지
늦가을 사과나무처럼 서 있어야 한다




<감상> 사과를 하려면 사과나무처럼 자기반성능력이 있어야 한다. 꽃을 버려야 하고, 이파리도 버려야 한다. 자신의 자존심을 과감히 버려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사과할 만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신인 것처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 하면 되겠는가. 신에게 용서를 빌기보다 사과할 당사자에게 사과를 하자. 큰 사과 열매를 두 손으로 쪼개기 힘들 듯 그만큼 사과하기는 쉽지 않다. 사과를 받아주는 사람도 쉽게 잘 받아주지 않으니 받아줄 때까지 사과껍질을 둥그렇게 깎아보자. 용서받을 때까지 늦가을 사과나무처럼 꽃과 잎, 그늘과 열매를 다 주고 오래 서 있어야 한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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