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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인문학] 당신에게도 꼭 그런 사람이 있기를
[돌봄의 인문학] 당신에게도 꼭 그런 사람이 있기를
  •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년 11월 21일 16시 5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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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최라라)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그곳에 도착했을 땐 바다 위로 내려앉았던 구름이 걷히고 있는 즈음이었다. 안개빛의 바다가 서서히 푸른 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도 안이 보이는 투명한 창문을 가지고 있다면 내 마음의 안개가 저렇게 걷히는 모습이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주위에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던 공부를 멈춘 친구도 있고 직장을 포기하고 휴양을 떠난 친구도 있다. 가깝게는 입원을 한 지인도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알려진 병,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럴 거라는 말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원인이라도 처음부터 우리 몸이 가지고 있었던 것. 잠재되어 있던 그것이 정확히 알 수 없는 계기를 통해 닫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이 그것으로 하여금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주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병인을 스트레스라는 말로 일축한다. 그것만큼 불확실하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병명이 또 있을까. 긍정과 부정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스트레스는 우리가 살아 숨 쉬는 한 공생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삶의 일부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심장을 콩콩 뛰게 하여 생각의 고삐를 단단하게 당겨주는 스트레스는 긍정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그것은 금단의 문을 열고 스르르 밖으로 나와 우리 몸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므로 그것은 흉측하고 괴팍하다.

스트레스는 팽팽히 조인다는 의미의 말이다. 우리는 날마다 팽팽한 긴장을 안고 살고 그 팽팽함의 고삐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절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누구에게 내 팽팽함의 수위를 좀 봐 달라고 하고 싶지만, 일정수치가 되면 경고음이 울리는 기계라도 달고 싶지만, 아직 그런 기계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결국 나 스스로 어느 날은 국수라도 먹여 그 팽팽함이 힘을 내게 하고, 어느 날은 금식이라도 하여 그것의 부피가 줄어들게 해야 한다. 이제 스트레스라는 것을 살리고 죽이는 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다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알아낼 수 없는 것, 그것을 오직 나만은 알고 있다. 그것은 마음이라는 곳에 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스트레스만 줄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긍정이 부정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꼼짝 못 하도록 잡고 있는 것이라면 긍정의 힘이 더 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나 문학가들은 긍정적인 스트레스에 대해 역설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선은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잘 키우는 방법부터 고민해 보자. 쉽게 생각하자면 너무나 간단한 문제이다. 어떨 때 기분이 좋은지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기분이 좋아지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방법을 쓴다. 다른 그 어떤 방법보다 간단하고 쉬운 일이다. 부정적인 스트레스가 몰려올 즈음이면 그래서 자신의 얼굴이 붉어지거나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을 즈음이면 기분 좋아지는 한 사람을 신속히 불러들이는 것이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시도해 본다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동해가 아득히 보이는 바닷가에 서 있고 기분의 전환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불러보려는 노력이 가끔은 허사가 되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은 결국 마음에 걷힌 안개를 걷어내게 한다. 지금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안개를 걷어주는 사람…. 당신에게도 꼭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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