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 은상

성묫길 산을 내려서다가
벼 이삭 서걱 거리는 논두렁을 밟고
해마다 이맘때에 아버지처럼
세상을 한번 둘러보았다

해질 녘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우물물을 길어 올려 목을 축이고
고무신을 신은 발등에 물을 부어준 다음
찬찬히 얼굴을 씻었다

그가 아들에게 가르쳐 준 말은
겁내거나 서둘지 말고
세상을 한번 쓱 둘러보라는 것 이었다

땀에 젖은 삼베수건을 목에 걸고
고단했던 당신의 논둑에서 둘러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쉬운 쓸쓸함이 있었을까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말과 같았고
모자라기 때문에 고마움이 있었다.
아버지의 논은 늘 그만큼 뿐이었고
들에서 돌아와 얼굴을 씻는 그는
언제나 경건한 모습이었다.

가난한 어머니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고사떡을 다 돌리고 나서
시루에 남아있던 팥고물로 밥을 지었다
팥고물이 섞인 밥에서는 고사떡 냄새가 났다

내가 떠도는 이 도시에 주차장에도
해마다 아버지의 그 가을은 내려오고
쓸쓸한 부족함과 고마움이 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서둘지 말고
가꾸어 놓은 논둑을 한번 둘러보듯이
천천히 차에서 내려
오늘의 이 얼굴을 씻어야 한다.

겁낼 것도 없다
가을은 누구나 고향으로 가는 때이니
세상을 한번 쓱 둘러보고 가면 그만이다
아끼며 살던 모든 것

돌아서서 보면 고마운 것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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