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철학자 한나 아랜트는 2차대전 유대인 학살의 주범 중 한사람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보고서를 바탕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을 썼다. 이 책엔 아이히만의 전 생애와 2차 세계대전 속 독일과 유럽의 정치적 상황이 입체적으로 분석돼 있다. 아랜트는 아이히만이라는 인물 분석을 통해 평범한, 어쩌면 선량하기까지 한 사람도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설파했다.

학살자 아이히만은 15개의 죄목으로 기소가 됐지만 한결같이 무죄를 주장했다. 당시 사람들은 재판을 보기 전까지 아이히만이 험악하게 생긴 악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판정의 아이히만은 머리가 희끗희끗 한 평범한 남성의 모습이었다. 아이히만은 정신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인 데다 좋은 이웃이자 아버지, 심지어 상당히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는 정신감정 결과였다.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자유와 인간애를 빼앗긴 2000만 북한 동포가 아닌 김정은 북한 정권과의 친화라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말을 연상케 한다.

유엔은 지난 2005년부터 북한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15년 연속 채택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호주 등 40여 회원국이 공동 참여했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지만 올해는 돌연 참여하지 않았다. 북한 눈치 보기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 7일에는 남한으로 넘어 온 오징어잡이 어선 선원 두 명을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북송했다. 헌법 3조의 규정대로 북한 주민도 한국 국민인데 법을 어기고 강제 추방을 한 것이다. 탈북자에게 90일 간의 의의 신청 기간이 주어지는데도 6일 만에 추방이다. 고문과 살해 위험이 있는 데도 북으로 보내 유엔 고문방지협약도 어겼다. 여기에다 청와대 안보실의 직권남용, 국방부 장관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소지를 안고 있는 군 지휘계통 문란 등 한 두 가지 문제가 아니다.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깊은 죄의식 없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외면하고, 탈북민을 사지로 몰아 넣는 것은 ‘아이히만증후군’으로 명명할만하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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