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태곳적 사막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모래가 채워진 방에 비가 온다.
빗방울이 공존하고 있는 모래 속
여자가 장미를 키우고 있다.
비닐로 덮어둔 침대모서리와
식탁까지 넝쿨을 늘어뜨리고 꽃잎을 잘게 썰어
모래가 담긴 밥그릇에 섞어 먹는다.

새벽2시, 습관적으로 젖는 시간이다.
물기를 말리지 않고 욕실에서 침대로 향하는 벽에는
장미가 압화되어 있다.
가시가 돌출된 벽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확률이 적어
바닥에는 늘 꽃잎이 흥건하다.
꽃잎을 드라이기로 말리며 허밍을 한다.
빗방울 수가 많아질수록 장미 꽃잎은 달다고
여자는 장담한다.

비에 잠긴 방, 사막장미 꽃잎을 물고 둥둥 떠 있는 여자 얼굴이 환하다.

<감상> 사막은 태곳적부터 사막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구가, 혹은 인간의 갈증이 시작될 무렵부터 모래가 시작되었고, 사막화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비와 친해야 하는 장미는 사막에서 버티며 삶을 영글어야 했다. 시인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으므로 숨 막히는 생의 일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현실에 잘 영합하지 못하고, 물에 둥둥 떠다니는 상상을 버리지 못하는 시인은 수많은 빗방울 기다려 몸에 젖기를 희망한다. 상상의 빗줄기야, 마구 쏟아져라. 달디 단 꽃잎을 물고 몸을 흠뻑 적셔 시를 피워 보련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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