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결혼한 걸 후회한 어머니가
마늘밭에서 아버지를 하나씩 뽑고 있을 때
어머니를 하와이 해변으로 옮긴다. 포토샵으로
비키니를 입히고 선글라스도 끼워준다. 물거품을 따라
해변이 파랗게 펄럭인다.
매운 해변에서 어머니는 콜록거린다. 오! 불쌍한 어머니
마늘 냄새를 지운 술잔에 데킬라를 붓는다. 재즈에 맞춘 어머니
어지럼증에 시달린 젊은 아버지를 클릭해 온다.
색다른 아버지, 혹은 빌려 온 어머니
피식, 해변에 웃음집이 생긴다.
어머니, 모조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간다.
아버지였던 아버지를 통 잊어버린 채
거울 밖에서 나는
어머니였을 어머니를 암만 찾으려 해도 적절한 색을 찾을 수 없으니
계절을 바꿔보기도 하고 해변을 바꿔보기도 하지만
낯선 풍경 위로 마늘 냄새가 기우뚱거리며 번질 뿐




<감상> 풍경을 마음대로 디지털화하여 관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고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 아버지 곁에서 일만 하시다가 결혼을 후회한들 바꿀 수 있나요. 그러니 어머니를 낭만의 공간인 하와이로 옮겨보고, 서로 다른 삶을 상상해 보곤 하지요. 병마를 겪은 아버지를 잊고 어머니께 온갖 색깔을 입혀 보지만 적절한 색을 찾을 수 없어요. 심지어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번듯한 옷 한 벌이 보이지 않아 왕후의 옷을 입혀드린 적도 있지요. 계절과 해변과 죽음조차 다른 색깔을 입혀도 찰나이고, 낯선 풍경 위로 진한 땀내와 마늘내만 번져올 뿐이죠.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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