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성, 군부대 연결도로 사용 결정, 1966년 12월 30일 사적 지정 해제
군부대 건물 조성으로 지형 대부분 훼손, 조선시대 성산봉수지에 표지석만 세워져

성산동고분군과 성산성 전경(우측정상부가 성산성지)

성주군민은 50여 년 동안 군사시설로 지정되면서 피해를 감수해온 성주읍 성산리 성산포대에 대해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국방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배치 지역을 (성주군 성주읍) 성산포대로 발표한 이후 성주군민의 대규모 반발에 부딪히면서 현재의 (성주군 초전면) 사드기지로 이전·확정됐다.

당시 국가안보의 대의와 지역발전의 명분을 차선으로 선택한 성주군의 눈물 어린 결정이었다.

그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

행정이 마비되고 군민 간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면서 경제 상황마저 악화 되는 등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현장이었다.

국가안보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오고 있는 성주지역민을 위해 정부와 국방부, 그리고 지역정치권은 늦었지만 성주군을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현재의 성산 포대를 군민의 품으로 되돌려 줘야 할 때다.
 

2008년군부대문화재조사 당시 촬영한 성산성내 봉수지 전경.

△1966년 12월 30일, 문화재에서 해제되다.

지금으로부터 53년 전인 1966년 12월 30일은 성주군 역사에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관리 역사에는 매우 슬픈 날로 기록됐다. 바로 이날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91호인 성주 성산성이 지정해제 됐기 때문이다.

해제 사유는 ‘성산성 인근 지역이 군 특수기지(현재 공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산성이 연결도로로 사용됨으로써 중요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상실됐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군부대 연결도로 사용 결정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성산의 문화재가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는 순간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사유이다.

남북이 대치하는 대한민국 안보상의 이유로 군부대 설립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이전에 엄연히 지정돼 관리되고 있는 국가지정문화재의 가치는 보전됐어야 했다.
 

성산성내 발굴조사시 출토된 건물지 전경.

△성산성의 현재.

2008년 있었던 ‘군부대 문화재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성산성은 성주군 성주읍 산 136번지 일원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성이 위치한 곳은 성주읍의 동편에 위치한 성산의 산정에 해당된다.

일제 강점기 편찬된 ‘조선고적조사보고(朝鮮古蹟調査報告)’에 처음 산성으로 소개되면서 북서편 능선에 넓게 분포하는 성산동고분군과 더불어 성산가야의 문화를 대변하는 유적으로 주목받았으며, 각종 문헌에 조선시대 성산봉수가 위치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사보고서에는 성산성으로 추정되는 성산 산정부의 대부분이 훼손됐고 원지형이 남아 있는 부분은 경계면을 따라 복토된 사면부분과 북편 능선의 일부뿐이라고 했다.

기존에 알려진 산성과 관련한 성벽이나 문지 등 유구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외 부대의 북 서편 모서리에는 각종 고지도와 문헌에 표기된 조선시대 성산봉수지로 알려진 부분이 있으나 그곳에는 성산성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성산성산성 봉수지정상부에 위치한 성주성산성 사적지정표지석

군부대 참호의 조성과 경계철책, 본부건물이 조성되면서 지형이 대부분 훼손돼 봉수와 관련된 시설은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조사대상지 전역에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각종 토기편과 기와편 등의 유물이 산포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성주읍으로 통하는 진입로가 개설된 북편능선과 사면에서 집중 확인되는데, 그중에는 기와편도 섞여 있어 산성과 관련한 건물지가 있었을 가능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성산성의 성벽이 있었던것으로 추정되는 군부대 진입로

군부대가 입지 하면서 성산성의 흔적은 대부분 없어졌으나 성산 정상부의 편평한 지형과 주변부의 가파른 사면이라는 입지적인 조건, 서편으로 이어지는 산정 및 능선에 조성된 성산가야의 주 고분군인 성산동고분군과 세트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성산성의 존재는 분명하다.

이러한 산성과 고분군의 관계는 가야의 가장 큰 특징으로 성주지역에서도 잘 적용되고 있는데, 성주의 3대 고분군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성산동고분군과 성산산성, 용각·수죽리고분군과 용각산성, 명천리고분군과 할미산성의 배치관계가 가야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성산성의 성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군부대 경계철책

△복원이 필요한 훼손된 유적, 두 번 죽일 뻔하다.

2016년 어느 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포대의 배치 장소로 성산 정상의 군부대가 발표되면서 엄청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처음 반대의 이유는 전자파·소음 등의 영향으로 인한 피해에서 비롯됐지만, 반대운동이 지속되면서 문화유산인 성산성에 대한 관심도 크게 나타나게 됐다. 제대로 관심받지 못하고 간과되고 있던 성산성의 파괴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1966년에 문화재에서 지정해제 됐을 뿐만 아니라 군부대가 들어선 지 50여 년이 경과 하다 보니 그 존재 사실조차 많이 잊혀졌던 성산성이 사드배치를 계기로 지역민에게 소환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학계의 전문가들은 성산성이 훼손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군부대 이전과 산성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지만, 지역에서는 그렇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었기에 사드배치가 지역민의 성산성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이미 훼손된 성산성 유적이 현재보다 더 넓은 부지가 필요한 사드 포대의 배치로 인해서 추가적인 훼손이 초래된다는 사실이 들어나게 되면서 많은 지역민들이 한 번 훼손한 유적을 두 번 죽일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사드 포대의 배치위치가 최종적으로 성산성이 아닌 성주군 다른 지역(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으로 결정되면서 염려됐던 추가적인 훼손은 없었지만, 복원해야 할 유적에 대한 거듭된 훼손을 방지해야 한다는 데 대해 학계와 지역민의 여론이 급속히 형성되고 있다.

△이제는 되찾아야 할 때다.

사드 포대 배치는 지역민의 정체성과 연관된‘성산’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한 자각과 군부대 이전에 대한 필요성을 대두시키기는 듯 했으나, 사드 포대 위치가 변경되면서 지속적인‘성산성 되찾기’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성주의 주산이며 상징이자 자존심이라 할 성산의 원형 회복을 위한 군부대 이전과 성산성 복원 등을 위한 범군민 운동이 전개될 조짐이 일고 있다.

성주 지역민은 물론 가야문화 연구와 문화재 보전 전승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학계 등에서는 정부와 국방부의 책임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유산 훼손을 예방하고 옛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있다.

성주군은 최근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성산동 고분군 사적정비사업과 내년 개관예정인 전시관 건립사업 등 제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탐방로 개설 등 제2단계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고분군과 산성이 한 세트로 구성되는 가야유적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성산성의 군부대를 즉각 이전시키고, 유적 복원에 대한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성주군은 1966년 12월 30일 성산성 사적 지정 해제는 재검토돼야 하며, 소중한 문화유산이 그 가치를 되찾을 수 있도록 사적으로 재지정하는 것이 제대로 된 피해 회복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질 군부대가 설치된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반드시 그 부대가 성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성주군민의 주장이다. 성주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담겨 성주의 정체성과 자존심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성산성을 성주군민은 “이젠 되돌려 받아야 할 때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권오항 기자, 도움말=박재관 성주군학예사
권오항 기자 koh@kyongbuk.com

고령, 성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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