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에는 명산으로서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고 하는 높이 870m의 청량산이 있다. 청량산을 처음에는 수산(水山)이라 했다.

청량산은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청송의 주왕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기악이다. 청량산에는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 선학봉, 축융봉, 경일봉, 금탑봉, 자란봉, 자소봉, ·연적봉, 연화봉, 탁필봉, 향로봉 등 12개의 봉우리가 있다.

12개의 고봉이 치솟아 절경을 이룬다. 그 가운데에서도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는 최고 절벽으로 손꼽히고 있다. 12 봉우리 이외에도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가 있으며 선녀가 가무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을 비롯한 신묘한 절승지가 많다.

청량산의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주변의 산북폭포와 반곡폭포 등이 청량산을 더욱 더 아름답게 하고 있다.

청량산 12봉, 봉우리 봉우리가 각각의 아름다움을 보이며 깎아지른 듯한 석벽과 자연경관이 수련하고 기암괴석이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소금강이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한다.

강 건너 계곡 안으로 들어가면 좌우 앞 할 것 없이 석벽이 둘러 있으며 높고 험하고 기이한 경관이 있다. 청량산에는 십 수개의 절과 암자 터가 있고, 신라 시대 이후 선현들이 수도한 유적이 있다.

그중에는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내청량사와 외청량사가 있으며 의상(義湘)이 창건했다는 유리보전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신라 시대의 명필 김생(金生)이 글공부를 했다는 김생굴과 최치원이 수도했다는 고운대와 독서대도 있다.

조선 시대 이중환(李重煥)이 택리지 복거총론(卜居總論) 산수도에서 청량산의 아름다운 산세에 대해 소상하게 기록했다.

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와 공민왕당도 있으며 둘레가 1,350척의 돌벽과 그 안에 우물 7개소 그리고 청량산 성지에 대한 기록 등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통해 알 수 있다.

퇴계 이황(李滉)이 도산서당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을 연구하다가 청량산을 수시로 찾아 수도했다는 흔적도 볼 수 있다. 퇴계 선생을 청량산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청량산을 사랑 청량산을 소재로 51편의 시를 남겼고, 청량산록발 (淸凉山錄跋)이라는 글을 썼으며, 청량산을 오가산(吾家山)이라고 했다. 퇴계 이황이 거처하며 학문을 연구했다는 그 자리에 후생들이 기념으로 세운 건물 청량정사(淸凉精舍)가 있다.

연화봉과 금탑봉 사이 계곡에 있는 청량정사에 대해 이퇴계 선생과 운산 이휘재 선생의 후손으로 전 한빛방송대표였으며 안산학연구원 이사장인 이필상 경영학박사가 이렇게 말했다.

청량정사를 순조 32년인 1832년에 사림들의 논의를 거쳐 퇴계선 생의 공적을 위해 세웠다 했다. 퇴계 선생은 1501년 안동에서 태어나 조정에서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 등 관직을 제수했었음에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안동 고향에서 후학을 위해 학문에 전념 1560년 도산서당을 운영하면서 독서로 수양, 많은 인재를 길러 온 유학의 대가다. 그 도산서당이 후에 도산서원으로 존치 2019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했다.

청량산은 구한말에는 청량의진을 조직 의병투쟁의 근원지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청량산은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경관이지만 역사적으로 뜻깊은 곳으로 경북의 팔경 중 하나로서 자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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