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중심 전국 각 기관·현장에서 ‘노노 갈등’ 깊어져
"일자리 줄고 구직자 늘며 갈등 격화"…내년 전망도 ‘암울’

15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 KEC지회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KEC그룹 경영진을 업무상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
경기 침체로 신규 노동력 진입이 단절되며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일자리 확보를 위한 민주·한국 노총의 ‘밥그릇 싸움’이 전국에서 격화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올해 중순께 건설산업 상생과 공정한 노사문화 정착을 위한 협력 약정서까지 작성했으나 줄어드는 일감 앞에 사실상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일자리 확보 싸움이 치열해지며 자칫 두 집단 간 큰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신규 노동자는 늘어나는 반면 건설 수주가 감소하는 비대칭 현상 때문에 ‘노노 갈등’이 촉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 건설업 수주 부진에 전국에서 ‘노노 갈등’ 심화

한국노총 전국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본부 노조원 3명은 지난 3일 오전 4시 37분께 양산시 동면 사송지구 한 건설회사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 있는 45m 높이 타워크레인을 점거하고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타워 크레인 3대에 1명씩 올라간 이들은 민주노총 행패에 대한 대책과 한국노총 조합원들 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자신들을 채용하지 않으면 건설장비 등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해 공사 현장에 있던 조합원 60여명 전원이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공사 관계자와 경찰은 이들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도록 설득하고 있으나 일자리를 되찾고 민주노총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때까지 해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고공농성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광주에서도 지난 10월 15일 한국노총 건설노조원이 광주 북구 건설 현장 타워크레인에 올라 농성을 벌였다.

한국노총 측은 “민주노총이 현장에서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들만 빼놓고 작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30일 전남 순천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한국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2명이 50m 높이의 타워크레인을 점거하고 고공농성을 했다.

이들은 크레인 업체 측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만 일감을 주고 자신들에게는 주지 않는다며 8일간 농성을 벌였다.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에 가입한 전 조합원에게 ‘위약금 500만원을 내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노총 전국 건설노조 대전·충청 타워크레인 지부는 지난해 노조를 탈퇴하고 한국노총으로 옮긴 조합원 2명을 상대로 ‘조합원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조합을 탈퇴했다’며 각각 위약금 500만원을 내도록 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도 일감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두 노조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며 촉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전지방법원은 양측 의견을 수렴해 위약금 200만원 선에서 화해하라는 권고 결정을 했으나 조합원들은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결국 심리를 맡은 대전지법 민사4단독 신귀섭 판사가 원고인 민주노총 패소로 판결해 위약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 병원·기업·톨게이트 등 곳곳에서 충돌

양대 노총은 건설 현장 외에도 기업과 병원 등 지역 곳곳에서 갈등을 빚었다.

올 8월 충북 충주시 건국대학교 충주병원에서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병원 경영 정상화를 위한 컨설팅 수용 여부를 놓고 두 노총이 대립했다.

민주노총 건국대 충주병원 지부는 “과도한 경영· 인사 개입으로 구성원 간 위기감을 조성하고 신뢰를 잃은 컨설팅 회사의 경영 자문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반대했다.

반면 한국노총은 “민주노총 측의 주장은 모순”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9월에는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1호 기업인 반도체 업체 KEC에서는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 고도화사업을 둘러싸고 두 노총이 맞섰다.

KEC는 구조 고도화를 위해 구미공장 서편 유휴 부지 17만여㎡에 대규모 쇼핑몰, 복합 터미널 등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KEC와 대표 노조인 한국노총 KEC 노조는 최근 ‘노사 상생의 길’이라며 구조 고도화 사업 추진 노사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는 “이 사업은 KEC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구미산단 공동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반발했다.

같은 달 경북 김천혁신도시 내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본사를 점거 농성한 민주노총과 본사 정직원으로 구성된 한국노총 도로공사 노조가 충돌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측이 톨게이트 요금 수납 조합원 1천500명 전원의 직접 고용을 요구했으나 한국노총은 “수납원들은 본사에서 나가 달라”고 되받아쳤다.

대구 중구에서는 한국노총 소속 환경미화원의 휴일수당 부정수급 의혹으로 3개월 넘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갈등이 이어지자 감사원이 감사에 나섰다.

◇ 같은 노조원끼리 ‘주먹다짐’…“내년 고용 전망도 암울”

전북에서는 양대 노총 간 갈등은 없었으나 같은 노조 내에서 일감을 두고 주먹다짐을 했다.

5월 전북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한국노총 조합원 간 난투극이 벌어졌다.

전국건설산업노조 전북지부 조합원들이 전북지역연대노조 한국건설지부 조합원에게 폭력을 행사해 이 과정에서 노동자 4명이 얼굴 등을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지난 5월 공사를 시작한 이 아파트의 일감 수주를 놓고 갈등을 빚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건설업을 중심으로 노노 갈등이 심화하는 현상의 주원인은 경기 침체로 인한 일자리 감소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일거리는 점차 줄어드는 데 반해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은 계속 늘다 보니 두 노총 간 갈등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임용빈 연구원은 “건설업의 경우 2017년 말까지 생산지수가 플러스였으나 2018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계속 하락세를 보인다”며 “올해 6∼7월 고용지수가 살짝 반등했으나 이마저도 계속된 하락세에 따른 기저효과였다”고 분석했다.

이어 “수주 부진 때문에 일용직 임시직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며 “특히 제조업·건설업에서 이 현상이 도드라지며 내년에도 전반적인 고용상황은 나아지기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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