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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인문학] 플라시보 효과
[돌봄의 인문학] 플라시보 효과
  •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년 12월 05일 17시 54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2월 06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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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최라라)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어릴 적 나에게 만병통치약은 설탕물이었다.

배가 아파도, 목이 아파도, 심지어 고열이 나도 엄마는 대접에다 검은 설탕 한 숟가락을 떠넣어서 휘휘 저어 주는 게 전부였다. 그 달콤한 물 한 그릇 마시는 일은 나에게 큰 행복이었고 그것을 마시고 나면 얼마 있지 않아 신기하게도 감기나 몸살이 뚝 떨어지곤 했다. 그 시절 나는 흑설탕을 약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것이 설탕이고 흑설탕 외에 유기농 원당도 많이 나와 있지만, 그때는 엄마가 설탕 한 봉지를 무척 아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음식을 할 때 조미료의 용도로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에서 그것은 약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그 달달한 물이 먹고 싶어 엄마에게 꾀병을 부린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 병원이라고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으니 실제로 그것이 나에게는 만병통치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 년에 한 번, 봄마다 심한 감기몸살을 앓곤 했다. 그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봄이면 몸살을 앓는다. 지금은 병원에 가거나 약국에 가지만 그럴 때마다 생각해보곤 한다. 엄마의 처방, 그 검은 설탕물. 어른이 되고서도 그렇게 설탕물을 마셔본 적 있다. 그러나 그때의 느낌과 달라서 내 감기를 낫게 하지는 못했다.

엄마의 처방이 몸에 밴 까닭인지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병원에 데리고 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내리는 만병통치약은 꿀물이었다. 나의 아이들도 꿀물을 먹으면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큰 탈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고서도 가끔 꿀물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나와 같은 추억이 아이들에게도 생겼을지 모르겠다.

지금 세상은 약의 천국이다. 노인들은 만나면 몇 가지의 약을 먹고 있는지가 자연스러운 화제이며 어떤 약이 어디에 좋다더라 하는 말은 세상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불티나게 팔려나가곤 한다. 약이 없던 시절은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약에 의지하고 약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약이 없다면 정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병원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증류수를 근육 주사하면 실제로 통증이 없어졌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정도가 심각한 환자일 경우에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신경성일 경우에는 그 위약이 효과 있는 경우가 많다. 환자는 자신이 진통제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결국 생각만으로도 통증이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수도 없이 마셨던 그 설탕물은 위약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포도당이 몸에 에너지를 만들어주고 따뜻한 물로 몸에 수분을 보충함으로써 감기 바이러스가 확산 안 되도록 막는 효과를 발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설탕물을 마시면서 약을 먹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내 몸을 살아나게 하고 감기를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위약이 좀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이 특효약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 몸에 들어와 정말 특별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사랑이라는 것도 위약이나 다를 바 없다.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테니 그것이 우리 몸을 어떻게 활기차게 하는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약국에 가기 전에 내 마음에게 위약을 먹여보자. 나도 모르게 나에게 속아서 나를 낫게 해주는 것, 약은 약국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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