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근무…"기회 닿는 대로 말하기 교육 하고 싶어"

포항지역 방송계에서 37년간 근무한 포항문화방송 장혜경 국장(여·60)이 5일 정년퇴임했다.

그는 20대에 입사해 청춘을 불살랐고 포항MBC의 ‘산 역사’라고 불릴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다.

여성 방송인으로서 지역 언론 발전에 공헌한 장 국장을 만나 정년을 맞는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장혜경 아나운서

△우선 정년퇴임을 축하한다. 몇 년 근무했나.

-1983년 포항MBC 음악FM 방송을 개국하면서 입사했으니 올해 37년 됐습니다. 오래 근무했죠? 사실 저도 이렇게 오래 근무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그때 여자 아나운서들은 대략 3~4년 정도 근무하다 결혼을 하면서 퇴직을 했죠.

그런데 저는 운이 좋게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결혼했다고 함부로 여직원을 퇴사시킬 수 없었고 저 또한 방송하는 것이 너무도 좋았고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억에 남는 방송은?

-AM의 ‘별이 빛나는 밤에’입니다. 아마 지금도 같은 타이틀로 방송이 되는 것으로 아는데요. 그때 저희가 서울에서도 잘 하지 않았던 전화 신청곡을 받았어요. 지금이야 매우 흔하지만 30여 년 전에는 기술적으로나 연출면에서나 아주 획기적인 것이었죠. 물론 진행자의 순발력과 애드리브가 가장 중요하지만요.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방송이었는데요. 주로 포스코 독신료에 계신 분들이 전화를 많이 주셨어요. 대부분 직장을 따라 고향을 떠나온 고독한 총각들이었죠.

그리고 교통프로그램 ‘푸른 신호등’을 8년간 방송했어요. 교통 통신원들의 활동도 매우 활발하였고, 택시 타면 저를 알아보시고 요금을 받지 않는 기사님들이 많으셨어요.

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방송을 했죠. ‘새싹들의 노래동산’, ‘공개방송’, ‘도민체전 중계방송’, ‘FM 아침의 행진’, ‘다시 듣고 싶은 노래’, ‘정오에 희망곡’, ‘FM 클래식’ 등 기억도 다 못해요.

△TV 방송도 많이 했는데.

-입사는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1987년 포항MBC-TV 방송이 개국하면서 텔레비전 방송도 같이하게 된 거죠.

만약 TV 방송이 먼저 개국 되었다면 저는 입사를 못 했을지도 몰라요. 비디오가 따라주지 못해서. 운이 좋은 거죠.

덕분에 방송이란 방송은 다 해보았습니다. 라디오 한 개 프로그램과 2~3번의 라디오 뉴스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TV 뉴스 한 타임, TV 프로그램 1개, 볼링 중계방송, 서울참여방송, 여기에 리포트도 나가고 심지어는 CM 광고까지 아나운서가 했었어요.

지금도 기억납니다. 라디오 광고인데 ‘족발 보쌈 쟁반 국수 임진각 2’하고 직접 제 목소리로 제작된 광고가 나가고 바로 이어서 ‘여러분의 포항문화방송입니다. HLAV, 지금 시각은 3시입니다. MBC 3시 뉴습니다’라고 뉴스를 진행했으니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들죠.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방송에서 사라져 그 당시 많은 시청자가 매우 궁금했는데.

-그때가 1998년 8월이고요. IMF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었습니다. 직원의 30% 이상이 명퇴했습니다. 저는 사내결혼을 했거든요. 부부가 같이 근무하니 여자인 저를 향한 회사의 퇴사 압력이 매우 거셌습니다.

결국, 이때 아나운서실에서 밀려나고 우여곡절 끝에 광고사업부로 갔죠. 하지만 여기서도 아나운서 특유의 설득력과 친화력이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전국에서 여자 아나운서가 광고부로 온 경우는 제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 덕분에 광고실적을 매우 높이 올려서 경주지사장, 광고부장, 광고사업부장으로 보직도 받고 아무튼 아주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방송을 못해 아쉬움도 컸지만요.

△지역사회단체 활동과 지역공헌사업을 많이 한 것으로 아는데.

-사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많은 분이 제가 함께 해주시길 원했어요. 기꺼이 시간 닿은 대로 참석했습니다.

경북여성발전위원회, 포항시여성발전위원회, 통일위원, 일월로타리와 미래여성회 창단 멤버였고요. BPW 10대 회장도 하고, 언론인홀리클럽 회장, YMCA 이사 등 많은 단체 활동을 했습니다. 미래여성회 창립식 때는 이희호 여사를 모시고 기조연설을 들었죠.

포스코 파이넥스 공장 준공식 사회를 제가 봤는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사회자 목소리가 매우 좋다고 하셔서 그때 바로 청와대 대변인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회사에서는 2009년에 홍보심의실로 발령을 받았는데 좀 심심하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은데 제 소관부서 일도 아니고, 생각 끝에 지역공헌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한 별도의 예산이 없지만, 저희에게는 홍보할 수 있는 방송이 있잖습니까? 그래서 회사와 민·관이 함께 하는 사업을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동대학생들과 함께 ‘장애인과 함께하는 마라톤대회’, 새마을회와 함께하는 ‘교복 물려주기’, ‘베트남 이주여성 친정집 고쳐주기’, 포스코 PHP 봉사단 등 지역기업과 함께 ‘집 고쳐주기’, 경북교육청과 함께 ‘경북학생댄스대회’, 포항시와 함께 ‘행복한 가게 나눔 장터’ 등 많은 사업을 했습니다. 서로가 빛나는 것이죠. 포항MBC도 소중한 시청자들인 지역민에게 도움을 드리고, 각 기관 단체 등도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참으로 보람되고 기쁜 일들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꿈은.

저는 입사할 때 아나운서로 입사했고, 그래서 역시 영원히 아나운서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경상도 사람들은 남 앞에서 말하는 것에 익숙지 못합니다. 그래서 매우 큰 손해를 보며 살아요. 학교생활, 직장생활, 가정에서도.

그래서 기회가 닿는 대로 저는 말하기 교육을 좀 하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해요. 어린아이부터 입시생, 취준생, 회사원, 목사님, 정치인 등.

그리고 역시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은 방송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저의 역량을 어떤 방법으로든 사회에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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