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섬유 중 명주가 으뜸…사양산업 아닌 보물단지 산업 될 것"

명주를 점검하는 허호 명인
“어릴 때부터 동네 전체가 명주를 짜느라고 분주한 어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이러한 여건에서 어머니를 도와드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평생 직업이 됐는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명주를 짜는 동안은 왠지 기분이 좋고 재미있어요”

상주 시내에서 25여 분 거리의 다소 조용한 곳이자 함창명주의 본거지인 상주시 함창읍에서 40여 년 동안 누에고치 실로 전통 명주 옷감을 생산하고 있는 허호(60·허씨비단직물 대표) 씨, 그는 2013년도에 경상북도 섬유 분야 최고 장인으로 선정됐다.

특히 그가 경영하고 있는 ‘허씨비단직물’은 올 8월, 경상북도가 선정하는 ‘향토 뿌리 기업’과 ‘산업유산’으로도 지정됐다. 상주시 함창읍 교촌리가 고향인 허 대표는 26세 때 결혼한 후 본격적으로 명주를 짜고 거래하기 시작했다. 허 대표는 5대째, 처 민숙희 씨는 4대째 명주 길쌈을 하고 있다.

허호 대표와 부인 민숙희 씨
△쌍고치와 염색으로 명주의 새로운 시장 개척.

명주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거래처가 안정되고 주문이 늘어났다. 공장은 풀가동하는 날이 많았다. 허 대표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실을 감는 기계와 명주를 짜는 기계를 끊임없이 개량했다.

또 수의 일색인 명주를 다양화하는 것을 고민했다. 오랜 연구 끝에 쌍고치와 염색에 주목하게 됐다. 쌍고치 실의 거칠고 불규칙한 결을 다양한 문양으로 표현해냈다. 쌍고치 실로 짠 명주는 그대로 물결 모양이나 추상적인 구름 모양 등으로 비춰 졌다. 시장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쌍고치 실 명주는 허 대표만 짰기 때문에 가격도 자신이 결정할 수 있었다. 시장의 반응이 좋아 주문이 계속됐다. 명주에서는 다른 천으로는 흉내를 낼 수 없는 색감이 표현되고 그 자체로 고귀한 느낌을 줬다.

이후 명주에 천연염료의 다양한 색과 문양을 표현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명주를 접거나 구겨서 염료에 접촉하거나 염색 후 말리는 과정에서 광도를 조절하는 등 문양을 표현하는데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색의 농담과 염료의 증발하는 성질을 조화시켜 의도하는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저 같은 연구와 실험 정신을 가진 명주 농가들이 함창명주의 명성을 새롭게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

명주실_작업하는 허호 명인.
△위기를 기회로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함창명주.

한산모시와 안동포에 어깨를 나란히 해 국내 3대 대표 전통 옷감으로 자리 잡은 함창명주는 날이 갈수록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비단으로 불린 명주 옷은 부귀나 출세의 상징으로 예로부터 귀한 옷감으로 여겨졌다.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 등 화학섬유가 한때 인기를 끌었으나 사람들은 다시 유행에 민감하지 않는 자연섬유를 찾게 됐고 명주 옷감의 우아함과 따스함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함창명주는 질감이 부드럽고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데 다 최근 개발한 제품들은 현대적 감각까지 갖춰 호평받고 있다.

함창지역은 몇 년 전만 해도 국산 누에고치를 구하지 못해 전통명주 생산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몰렸었다. 양잠산업이 건강 보조식품 중심으로 변모하면서 누에고치가 귀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2년부터 경북도와 상주시가 5개년 계획을 세워 뽕밭 조성 등의 지원에 나서면서 함창명주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전통명주에 감물 염색을 한 스카프와 옷감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 무늬로 재탄생해 그 희소가치를 인정받게 했다. 상주는 전국 제일 감 주산지여서 낙과한 감을 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별도의 재료비가 들어가지 않는 장점이 있다.

허호 대표가 명주 날실 작업을 하고 있다.
△함창명주의 세계화와 전통산업 보급에 노력.

처음엔 명맥만 유지하던 허 대표의 명주는 상주시가 추진해 온 함창명주 명성 알리기와 명주 패션디자인 페스티벌 개최, 명주테마파크 및 명주박물관 건립과 양잠 농가 지원책 등에 힘입어 해마다 소득이 증가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허 대표는 명주 옷감에 감물을 입히는 새로운 기술까지 접목해 수출의 물꼬를 트는 등 함창명주 산업의 혁신을 불러왔다.

1970년대 중반까지 수출산업으로 각광받던 명주산업은 나일론 등 합성섬유 등장 이후 전국적으로 ‘입는 양잠’이 사실상 고사하면서 오디와 뽕 등의 ‘먹는 양잠’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상주는 입는 양잠도 건재를 과시하면서 먹는 양잠과 함께 최근 추세인 6차 농업 산업으로 부활하고 있다.

허 대표는 2006년 아시아 태평양 잠사 곤충 심포지엄 현장 방문과 2009년 농촌진흥청의 양잠산업 재도약을 위한 현장 대토론회, 2010년 국제 슬로시티연맹 이탈리아 본부 실사단 방문, 2013년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방문 등 전통 섬유의 살아있는 산업현장이자 문화적 해석의 장으로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다.

특히 명주 길쌈과 감물 및 천연염색 관련 기술개발에 매진해 2019년 현재 9개의 특허와 2개의 실용신안을 보유하고 있다. 전국 공모전에 명주작품을 출품해 수상도 무려 20여 회나 했다.

2019 경북도청 전시회
또 국립 민속박물관과 대구 섬유박물관, 경북도청 초대전, 미국 및 프랑스 전시회 등 국내외 작품 전시와 체험행사를 통한 전통산업 보급에도 노력했다.

허 대표는 함창명주 계승과 발전, 6차 산업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하는 ‘지역 명사’에 선정된 바 있고 같은 해 경상북도 문화상(문화 부문)도 수상했다.

산업 유산으로도 지정된 허씨비단직물 잠실은 1959년 건립된 영천의 잠실을 이전해 건립한 것이다. 옛 양잠 도구의 원형과 사진을 전시해 사라져 가는 양잠 문화의 보고로 재탄생시켰다. 지금은 옛 양잠과 명주 길쌈 도구들이 시대별로 잘 보존돼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살아있는 박물관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끝으로 허 대표는 “모시와 삼베 등 자연 섬유 중에서도 명주가 으뜸이다. 명주산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라 보물단지 산업이라고 하고 싶다. 명주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새로 개발할 분야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보물처럼 귀한 새로운 분야가 생기고 시장에서 금방 인기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섬유 분야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규방 공예팀이 허씨비단직물을 견학하고 있다.
허씨비단직물 전경
허씨비단직물을 방문한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 여행객들
미국 샌프란시스코 규방 공예팀 방문 기념촬영
미국 데이비스시 사절단 방문 사진
경북도청에서 개최된 허 씨의 명주 길쌈 초대전
김성대 기자
김성대 기자 sdkim@kyongbuk.com

상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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