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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
[아침광장]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
  •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 승인 2019년 12월 10일 16시 54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2월 11일 수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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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공자님은 문학 공부를 특히 강조했습니다. 문학의 효용론적 설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자님의 “시를 삼백 편 외우면(시경 공부를 하면) 생각함에 아예 삿됨이 없어진다(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라는 말씀입니다. 순전(純全)한 인격체가 되려면 문학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웬만한 문학개론 책에는 다 소개되어 있는 유명한 ‘교과서적인 내용’입니다. 그만큼 문학의 효용을 잘 나타낸 말도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문학옹호론자로서의 공자의 진면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은 따로 있습니다. 도학(道學, 성리학)에 치중해온 저간의 유학 풍토 때문에 그것의 의미가 다소 간과된 측면도 있었겠습니다만, 공자님이 문학의 효용으로 가장 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실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라, 오늘 죽을 것처럼”, 공자님은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 내용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 정사를 맡겼을 때 잘 처리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 혼자서 응대하지 못한다면, 비록 많이 암송한들 무엇에다 쓰겠느냐?”고 하셨다. (子曰 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논어』 「자로」]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순수한 감정을 흥기시키며,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며, 공분(公憤)하게 하며, 가까이로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고 하셨다. (子曰 小子 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논어』 「양화」]

겉 내용만 보고 “시를 배우는 목적은 정사(政事)에 숙달되기 위해서다. 시 속에 담긴 풍부한 ‘교양적 요소’를 잘 익혀야 한다”라고 위의 글을 (종전처럼) 해석하면 공자님의 문학적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순서를 살피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먼저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라는 전제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 말이 제일 앞에 놓여있다는 것은 그 행위의 목적이 이미 별도로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테면, ‘순전한 인격체가 되기 위함’이라는 문학공부의 목적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제로 ‘순전한 인격체’에 근접했다고 하더라도 정사에 능치 못하면 제대로 된 문학공부를 했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지요. 숙성된 인품을 지니기 위한 필수적 교양으로 ‘시(문학) 공부’가 특히 중요하지만, 설혹 그것에 열중해서 ‘300편 암송의 성과’를 내는 경지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그 공부의 결과를 실천적 차원(정사나 외교 등)에서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면 그런 노력은 도로(徒勞)에 불과하다, 그런 뜻이 됩니다. 그렇게 읽어야 두 번째 공자님 말씀에 나오는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을 “교과목으로서의 ‘시’는 우선 수많은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알게 하는 박물학의 교본이었다”라고 (종전처럼) 새기면 큰 오독입니다.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 말은 이를테면 윤동주 시인의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시적 표현처럼 보편적 사랑을 강조한 말입니다.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는 주변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 이치를, 공자님은 그렇게, 시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류가 지닌 것 중에서 시만큼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 없다 라는 말씀을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만물에 대한 연민의식, 특히 쉽게 다치거나 소멸하는 연약한 존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그렇게 강조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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