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소속 교단에서 면직 처분을 받은 목사이자, 기독교의 주요 교단들이 이미 모두 탈퇴하여 껍데기만 남은 한국기독교총연맹(한기총)의 대표회장이며, 국가기관의 소환에 불응하다 출국금지 대상자가 된 전광훈 목사의 막말이 연일 논란이다. 이전에도 신문 지면에 담기 어려운 말을 해서 “OO목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가, 이번에도 기독교인인 필자로서는 차마 옮길 수 없는 말을 백주대낮에 내뱉어 세간을 어지럽히고 있다. 자신의 극우적 정치 주장과 이단적인 종교 발언을 할 때마다 “4.19”, “자유민주주의”, “진실”, “본 회퍼”, “순교”, “청교도”, “예배” 등 본인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와 이름들을 나열하는 걸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닌데, 이제는 하나님과 본인을 친구인 양 표현하고 말았으니 마침내 신계(神界)에 들어선 모양이다.

오묘한 정신세계를 가진 이들이야 전에도 많았으니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참담한 것은 전광훈 목사 자신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다. 이런저런 민감한 이슈들에 뛰어들어 기독교의 이름으로 남을 정죄하고 스스로를 옹호하던 이들이, 정작 목사의 직함을 휘두르며 이단적 발언과 뻔한 거짓말, 신성모독을 서슴지 않는 자에게 동조의 미소를 보낸다. 신학교를 나와 전도사라는 야당 대표와 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자신이 주최한 집회에 나와서 힘을 거드는 마당에 “대한민국이 앞으로 10년 동안 전광훈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한 그의 호언을 그냥 허언이라 할 것인가.

오늘 전광훈 목사에 대한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침묵 혹은 동조는 종교인에게조차 정치가 종교에 앞선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가 목사임을 자처하면서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를 거스르고 있는데도, 결국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그 부적절함을 지적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칠게 던져주는 전광훈 목사를 앞세워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급기야 흉내를 내기까지 한다.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기득권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반기독교적 태도요, 종교의 탈을 쓴 정치다.

종교인도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전광훈 목사나 그 추종자들, 그리고 암묵적이거나 적극적인 동조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정치적 입장의 표명이 종교의 언어를 통과하는 순간 정치와 종교가 모두 왜곡된다. 종교의 언어로 이루어지는 정치에는 대화와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지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지지를 ‘하나님의 뜻’으로 함부로 포장하면 타종교와 다른 정치 집단에 대한 혐오와 이단적인 사상으로 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극우파가 되는 것은 본인의 자유이지만, 거기에 하나님을 극우파로 만드는 자유는 포함되지 않는다.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이 기독교와 정치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된 현실 자체가 한국 기독교회와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과 정치권 전체의 수치다. 그와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었던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전 목사와 절연할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한다. 매일 십계명을 어기는 자와 어떻게 같은 자리에 선단 말인가. 전 목사와 주변 인물들이 보수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지지하던 사람들도 종교의 탈을 쓴 가짜 정치인 말고 다른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종교 일반이 가진 가치와 위엄을 무너뜨리며 법치와 민주주의를 통으로 부정하는 것이 보수주의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가 동원하는 군중의 기세를 탐해서 그 옆에 기생하려는 정치인과 정치조직들은 이제 정계를 좀 떠났으면 좋겠다. 막말과 범법, 남의 나라 국기로 무장한 사람들에 기대고 싶은 걸 보면 그나마 아슬아슬하던 정치적 감각과 희미한 양심마저 다 없어진 듯하니 말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