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구인 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자녀 희망 직업에 관한 설문 조사를 했다. 부동의 1위는 공무원이고 의료인과 법조인이 뒤를 이었다. 교수와 교사로 상징되는 교육자가 후 순위로 밀린 사실은 의외의 결과다. 모두들 공시로 몰리는 세태를 보인다. 어쨌든 안정적 일상을 희구하는 본능은 인지상정.

사실 내가 눈여겨 살핀 항목들 가운데 하나는 ‘사업가 혹은 창업자’이다. 이를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만큼 성공이 힘들고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무난한 삶을 영위하는 샐러리맨이 소시민들 바람인 듯하다. 부모의 기대가 그러하니 청춘들 역시 정해진 궤도를 좇아가지 않으랴.

기업체 오너인 어떤 지인이 오버랩한다. 업자답지 않게 진지한 인품을 지녔는지라 대화가 잦았던 분이다.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당부한 얘기이다. “월급쟁이 되지 말고 장사해라. 그래야 꿈을 펼친다.” 당시 그 의견에 동의를 하지 않았다. 그들의 고뇌를 수시로 목도한 탓이다.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빈약한 실업가 출신.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행정부 최고 직책을 승계했다. 당초 세간의 우려와 달리 분별력을 갖춘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된다. 정치가로서 명성이 자자할 즈음 ‘남성복 판매상’으로 분류됐다. 그는 다양한 사업을 벌였으나 기업가 체질이 아니었다.

프랑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까르띠에. 이 회사는 여성 스타트업 CEO를 대상으로 창업가를 발굴하는 국제 대회를 개최한다. 7개 대륙에서 각각 3명씩 후보자를 뽑은 다음 최종 결선에서 7명의 수상자를 선발한다.

올해 한국인 최초로 조연정 대표가 영광을 차지했다. 동아시아 우승자로서 상금 10만 달러 주인공이 된 그녀는 세이글로벌 대표로 재직한다. 은퇴한 시니어를 채용해 한국어 공부를 원하는 세계인과 연결해주는 비즈니스. 젊은 여성으로서 이룬 쾌거라 더욱 자랑스럽다. 유리 천장이 여전히 위력을 발하는 환경을 극복한 사례다.

언젠가 경남 함안과 의령의 경계를 흐르는 남강의 ‘솥 바위’에 갔었다. 내가 보기에 그런 형상 같진 않으나 빛나는 전승을 품고서 관객을 맞는다. 주변 이십 리 안에 거부가 나온다는 전설. 풍수지리는 차치하고 솔깃해지는 내용이다.

실제로 북쪽 의령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남쪽 진주엔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 그리고 동남쪽 함안엔 효성 조홍제 회장의 생가가 자리한다. 그중 두 곳을 방문한 기억이 난다. 정장 차림 경비원이 내부를 지키는 호암 생가는 한눈에도 부잣집 도련님 자태가 어른댔다.

영화 ‘호스티지’는 대저택에 침입한 인질범을 상대로 펼쳐지는 액션물. 집안 금고를 뒤져 돈다발을 꺼낸 십대의 범인들은 씹는다. “있는 것들이란!” 질투와 분노가 뒤엉킨 욕설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서장 역의 브루스 윌리스. 첨단 보안 장치가 설치돼 자동으로 창문과 출입구가 폐쇄되는 현장을 보면서 지그시 내뱉는다. “있는 것들이란!” 차디찬 경멸이 물씬한 일갈.

삼성경제연구소가 중고생을 상대로 물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니라 사회 기여라는 의견이 많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주인공 윌리스의 냉소와 약간은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경제 규모에 비해 기부지수는 하위권.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애달픈 연말이다. 최고의 기업 홍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아닐까. 미국의 카네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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