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裸木)의 가지에 얹혀 있는 새의 빈 둥지를 본 지 여러
철이 지났어요

아무 말도 없이 가신, 내게 지어 놓은 그이의 영혼 같은 그
것을 새잎이며 신록이며 그늘이며 낙엽이 덮는 것을 보았
어요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예전의 그이를 흙으로 거짓으로 다
시 덮는 일에 지나지 않을 뿐

나는 눈보라가 치는 꿈속을 뛰쳐나와 새의 빈 둥지를 우러
러 밤처럼 울었어요




<감상> 이별은 새의 빈 둥지를 보는 것과 같아요. 특히 나목의 가지에 얹혀 있는 빈 둥지를 볼 때는 그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육친(肉親)과의 이별은 더 하겠지요. 그이의 영혼이 있다면 바로 까치집 둥지의 모습이랄까, 아니면 굴뚝에서 타오르는 연기의 영혼이랄까. 연기의 영혼 때문에 둥지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뿐인가요. 새잎과 그늘과 낙엽을 덮어 주는 나무는 둥지와 생을 같이 하지요. 떠난 이를 자꾸만 거짓으로 포장하고 환상에 사로잡히므로 눈보라치는 밤에도 빈 둥지를 우러러 보며 울 수밖에 없어요. 봄에 새잎으로 둥지를 감싸는 저 나무가, 바로 간절함이 묻어 있는 내 모습이 아닐까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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