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 6월 충청감사 김수근이 병조판서 김좌근을 급히 찾아왔다. 그들은 세도가 안동김씨들로 사촌 형제지간이었다. 재위 18년째인 현종이 후사도 남겨놓지 않고 갑자기 쓰러졌다.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안 왕실의 종친부는 긴급 회동을 열고 후사를 결정해야 했다.

“이하전이 낙점될 것 같다”가 대세였다. 이하전은 완창군 이시인의 아들로 적장자가 없는 상황에서 가장 가까운 왕손이었다. 그는 기개가 있고 똑똑한 인물로 알려져 왕위 추대의 1순위였다. 김수근이 김좌근을 찾아 온 것은 이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김수근이 말했다. “그자가 왕이 되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김좌근 등 안동김씨는 시파인데 이하전은 반대파인 벽파에 속해 있었다. 영조 때 사도세자 사건에서 사도세자를 감싼 온건파 세력이 벽파이고, 허위 보고로 사도세자를 죽게 한 강경파들이 시파였다.

시파들은 세도정치를 하면서 벽파들을 천주교를 비호하는 적폐세력으로 엮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된 두 파벌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정쟁을 벌이면서 정적제거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이하전이 왕위에 오르면 시파의 운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김좌근이 물었다. “이하전 말고 왕손으로 누가 좋겠나?” 안동김씨 측은 똑똑한 이하전 대신 자신들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어줄 수 있는 어리숙한 왕손을 수소문했다. 부랴부랴 찾아낸 것이 강화도령으로 알려진 철종이었다. 일가붙이도 없는 천애의 고아, 글자도 모르는 무식자였다.

섬 무지렁이에서 왕이 된 철종은 평생을 안동김씨 실세들에게 눌려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32세 나리로 요절했다. 그는 죽기 전 “내 어진에 ‘일월오봉도’를 그려 넣지 말라”고 유언했다. 왕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어진 뒤에 해와 달, 다섯 봉우리를 그리게 돼 있지만 철종은 거절했다. “내가 죽은 뒤에라도 일월오봉도를 그리지 말라. 그림이 의미하는 것처럼 나는 백성의 어버이 노릇을 못해본 임금이다”

집권 여당이 장기집권을 노려 야바위 같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강행을 고집하는 것은 안동김씨의 실권에 대한 두려움 강박증과 같은 맥락이다. 실권하면 두려운 것이 그렇게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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