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시대 상황에 따라 건강한 권력 아래서는 충신이 태어나고, 병든 권력에서는 간신이 득세한다. 정치의 역사는 간신의 연대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역사가 시작된 이후 오늘날까지 간신은 끊이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간신의 대표적인 예는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때 정권을 장악해 국정을 농간한 10여 명의 환관 무리 ‘십상시(十常侍)’다.

박근혜 정권 당시 최서원(최순실)의 남편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안봉근·정호선 비서관 등이 강남의 한 중국집에서 자주 어울리며 국정을 논의한 것이 드러났다. 당시 이들과 어울린 사람들이 ‘십상시’에 비유됐다. 2014년 말 불거진 이 ‘정윤회 문건’으로 인해 박근혜 정권이 결정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됐다.

새로운 ‘간신론’이 등장했다. ‘매트릭스 간신론’이다. 최근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며 동양대학교 교수직을 던진 진중권 교수가 27일 페이스북에 작심한 듯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 간신들이 너무 많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 중에서 누가 간신인지 잘 구별해야 한다. 거기에 정권 성패가 달렸다”며 청와대 ‘친문’ 진영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부패한 측근들은 위기를 벗어나려고 ‘프레임’을 짠다. 자기들 해 드시는 데에 거추장스러운 감시의 ‘눈’을 마비시킨다. 우리 사회에 그 ‘눈’의 역할을 하는 것은 검찰과 언론이다. 그들(부패한 측근)은 대통령의 권력을 훔치기 위해 사회의 두 ‘눈’부터 가린다. 이것이 그들이 구축하고 있는 매트릭스다. 아키텍트들이 프로그래밍을 짜면 일부 어용 언론인, 지식인들(그 중에는 대놓고 ‘나는 어용’이라 자랑하는 이도 있다)이 나서서 바람을 잡는다. 그러면 대중은 수조 속에서 누워 뇌로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김어준의)뉴스공장’이나 ‘(유시민의)알릴레오’ 같은 양분을 섭취하며 잠자는 신세가 된다”며 영화 ‘매트릭스’장면에 비유했다.

진 교수는 “친문 측근들이 청와대 안의 공적 감시기능을 망가뜨려 물 만난 고기처럼 해 드셨다”고 했다. 진 교수의 말처럼 이 시대에도 사직단의 기둥을 갉아 먹는 쥐(사서·社鼠)들이 설치고 있다. 대통령 가까이에서 안으로는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밖으로는 혹세무민하는 간신배들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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