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이번에 통과된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의 구체적인 쟁점이 무엇이고, 비례용 위성정당이 생기면 뭐가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알아보려 한동안 애를 썼다. 선거에서 사표가 너무 많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회의원의 수와 지지하는 국민의 비례성을 높이는 것이 이번 선거개혁의 취지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정쟁을 한 다음에 겨우 통과된 법을 보니 복잡하고 지저분한 것에 비해 비례성은 조금 높아진 정도이다.

선거법 개정안이 ‘누더기’가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국회의원 정수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비례대표의 수를 늘리고 인구가 많은 지역의 지역구도 좀 늘렸으면 협상도 간단해지고 문제도 적었을 것이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지 못한 것은 일 년 내내 싸움만 하면서 월급을 받아가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너무 커서이다. 그러나 무능하고 악한 국회의원을 바꿔야지 그 수를 줄이거나 동결하는 것이 해법일 수 없다. 이번에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한 결과 손해를 본 것은 결국 국민이다. 비례성은 충분히 높이지 못하고 선거제도만 복잡해졌다.

때늦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기왕 비례성을 높이기로 했다면 이번 총선 이후에라도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국회의원 수가 늘면 후보도 늘어서 선택의 폭도 덩달아 높아지고 좋은 국회의원을 뽑을 가능성이 커질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이 늘어나면 비용도 커지겠지만, 수를 늘리는 대신 세비와 각종 경비, 의원의 각종 특혜와 보좌관 수, 냉난방비 등을 줄여서 전체 비용을 동결하면 된다. 20대 국회의 무능을 고려하면 세비를 반으로 줄여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는 것은 모든 표의 가치를 동등하게 만드는 헌법적 가치 외에도 오늘날의 극단화된 정치 상황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사표를 양산하는 선거제도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지역구, 그중에서도 자신들의 지지층만 보게 된다. 3, 40%만 득표해도 1등이면 무조건 당선되기 때문에 지지자들에게는 허황한 거짓 약속을 하고 어차피 자기를 찍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무관심을 넘어 빨갱이, 친일파의 오명까지 씌워 버린다. 비례성을 높이면 호감도뿐 아니라 비호감도에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이런 행태가 줄어들 것이다.

이 와중에 비례대표를 없애고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고 하는 야당도 있었다. 이는 현행 제도보다 비례성을 더 줄이자고 하는 것이고,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모순이다. 그러다가 법이 통과되자 이제는 위성 정당을 만들어 새 제도에 대처하겠다니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요, 신성한 선거를 장난으로 만드는 일이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느냐 늘리느냐 자체보다 비례성의 원칙이라는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한다. 시민 스스로가 자신의 표가 가지는 무게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그 권능을 지키려 할 때에만 국회의원들을 추동하여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 첫걸음은 역시 선거를 권력의 연장 수단으로만 보고 물불을 안 가리는 국회의원들은 잘라내는 일이 될 것이다. 새해에는 좋은 국회의원들이 많이 선출되어서 국회의원 수를 더 늘리고 싶은 생각, 세비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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