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학강 미술관관장.한국화가
김진혁 학강 미술관관장.한국화가

칼럼을 의뢰받고 우리지역 미술가에 관한 얘기 중 누굴 첫 장으로 꾸며 볼까? 하고 여러 날 고민했다.

과거 수십 년 동안 나의 관심사가 된 여러 훌륭한 미술가들이 생각났다. 그중에 최근 대다수의 많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관심사가 된 대구시 달성군 현풍 출신의 곽인식(1919-1988) 이라는 재일동포 현대미술가가 단연 떠올랐다.

그는 언제부턴가 내 가슴의 한 언저리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과거를 회상해보면 1985년 봄, 대구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수화랑에서 약 일주일간 곽인식 초대개인전이 열렸다. 그 시절 미술교사 초년생이었든 난 수시로 수화랑을 들락거렸다. 그 기억 속에 긴 흰 머리카락의 장발에 호리호리한 중년예술가 곽인식 화백을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된다. 당시 큰 나무 둥치를 절단한 입체설치 작업과 수많은 색점들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평면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후일 가끔씩 들려오는 소식 중에는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앞 야외조각공원에 <작품 86-Endless>라는 둥근 원기둥 형태의 대형 입체작품을 제작하였다는 소식이었다. 사물(事物)의 해석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그 사물들과의 교감을 시도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후 1988년 봄 도쿄에서 작고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언론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끔씩 중요한 전시회에 유작을 보았다. 그러다 이번 2019년 여름에 <곽인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이어서 그가 평생의 소원이었던 고향 대구미술관에서도 열렸다. 대구 경북의 많은 관람객이 직접 보고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 와! 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리 현대미술의 역사에 이 정도 한 차원 수준 높게 앞서간 현학적 미술가가 존재했는가?
 

곽인식 설치작품 (작품86-EndLess)
곽인식 설치작품 (작품86-EndLess)

1969년 일본의 미술전문지 <미술수첩>에 그가 기고한 문구가 곽인식의 예술사상과 미학을 알 수 있게 한다. “우주 속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물이 존재한다. 이토록 많은 사물들에게 무언가 말하게 해주고 또 그들의 말들을 들을 수 있다면 현재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일들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놀라운 사유체계를 소유한 지적 예술가의 발언으로 보인다.

1970년대 들어오면 도쿄 근교의 강가에 가서 자연석을 주워와 망치와 못으로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수많은 점을 새기기도 하여 다시 본래의 그 자리로 되돌리는 작업을 시도 하였다. 이것은 끊임없이 사물들과 대화하는 작가 정신의 소신이었다. 이번 대구미술관 곽인식 전시에서 보여 지는 다양한 물질들의 작업에서 우리민족의 시원인 ‘순환’관계로 이해해야만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는 처음과 끝이 둘이 아니고 한 개의 연결된 통합구조라는 것이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그러하였고 도학이 조선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사물의 이치를 깨달으려고 노력하는 것)라는 중요한 키워드와 이(理)와 기(氣)에 관한 수준 높은 논쟁도 연결된다고 본다. 이러한 동아시아 예술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현대미술가를 이곳 대구 출신의 작가라는 대단한 자긍심으로 우리가 헌창하고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 ‘사물에 말을 건’위대한 곽인식 작가의 작업과 예술철학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싶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