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내 바지는 내 엉덩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칫솔은 내 입 안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구두는 내 발가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빗은 내 머리카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귀가 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지도 칫솔도 구두도 빗도 익숙해지다 바꾼다
발자국 소리도 숨소리도 익숙해지다 멈춘다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감상> 오래된 사물들은 내 몸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내 영(靈)과 넋이 사물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수많은 자전거 속에서도 내 자전거를 금방 알아차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도 발자국 소리, 숨소리에 익숙해지면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매 시간마다 순회하는 교장, 교감 선생님의 발자국 소리도 학생들은 금방 알게 되고 학교생활에서 자신을 맡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사물도 바꿀 때가, 사람 사이도 언젠가 떠날 때가 있으니까. 이제 바꿔진 사물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고, 관계가 멈춰진 부부나 연인 사이에도 자신을 맡기고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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