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이재영 경남대 교수·정치학 박사

설날 우리는 차례(茶禮)라는 형태의 제사(祭祀)를 지낸다. 같은 제사이지만 마음과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집안에서 늘 제사를 지내왔기 때문에, 문중 어른이 시키니까, 조상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 남의 눈이 무서워 체면치레를 하려고,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등등. 특히 많은 사람은 돌아가신 조상을 하나의 신으로 생각하면서, 제사를 자신 및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행사로 여긴다. 이는 토속신앙, 인간의 한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현대사회의 특징이 결합되어 만들어 낸 결과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는 신과 제례에 대한 공자(孔子)의 견해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공자가 최초로 민간에서 행해지던 제사를 자신의 세계로 도입하여 제례라는 예법으로 발전시켰으며, 그 후 제례를 포함한 모든 예법이 공자의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사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공자가 무신론자였다는 사실부터 봐야 한다. 공자의 신관(神觀)은 그의 행적과 사상이 기록되어 있는 논어(論語)에 잘 나타나 있다. 계로(季路)가 “귀신(鬼神)을 섬기면 어떻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공자는 “아직 산 사람을 섬기는 것조차 할 수 없는데, 사자(死者)의 영(靈)에 봉사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했다. 계속해서 “사후(死後)의 세계는 어떻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공자는 “이 인생조차 모르는데 하물며 사후의 세계는 알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공자가 병이 들었을 때, 자로(子路)가 “신(神)에게 병이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다“고 하자, 공자는 “내가 기도한 지는 오래되었다”라고 하면서 이를 거절하였다.

무신론자인 공자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제례로 발전시키고, 이를 중시한 이유가 무엇일까? 해답은 ‘도덕국가 재건(혈연 중심의 봉건제도 회복)’이라는 그의 정치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공자는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의 원인으로, “가족주의정신의 상실로 인한 제후들의 힘의 추구와 힘에 의한 정치”를 지적했다. 혼란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효와 질서를 중심으로 도덕을 부흥시켜 가족을 결속시키며, 이를 촌락으로 확대하고, 국가에 미치게 하며, 나아가 천하를 도덕국가로 통일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했다.

공자는 자신의 사상에 제사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예법(禮法)으로 발전시키고 장려했던 것이다. 제사가 효와 질서에 대한 교육적 효과가 있으며, 제사 참석은 가족의 결속과 가족 간 질서를 유지시키고 이것이 사회질서 유지에 이바지하고 천하의 질서유지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정치적 목적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제사가 효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가족의 결속과 가족 간 질서유지, 사회질서유지에 기여하는 역할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자적 관점에서 보면 관습적으로, 피동적으로, 의무감으로, 체면 때문에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 조상을 자신과 가족의 복을 비는 신으로 섬기면 더더욱 안 된다.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조상에게 감사드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집안 어른과 혈연의 정을 나누며, 동기끼리 우애를 다진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이러한 제사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동기간의 우애를 배우게 해 줄 것이다. 물론 사회질서에 대한 긍정적 영향은 덤이다. 공자도 이러한 형태의 제사를 바라며, 제사가 미치는 이러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설날 새로운 생각으로 차례상 앞에 서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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