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칼 융은 꿈의 내용이 하나의 의미로만, 즉 억압된 욕망의 분출로만 해석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몸처럼 정신도 항상성(恒常性·늘 같은 성질을 유지함)을 유지하는 일련의 자기조절 체계일 것이라고 융은 생각했습니다. 꿈의 표현은 그 자기조절 체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독자적인 상징이며 당연히 꿈 본연의 자기표현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꿈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상징적 표현은 정신의 불균형, 즉 심리에너지가 과도하게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보정(補正)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는 많이 다른 견해였습니다. 프로이트는 모든 꿈이 사실상의 위장된 소망실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꿈은 억압된 유아기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프로이트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융은 꿈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다음의 인용은 융이 과도한 외향성 인간(지나치게 외부세계에 몰두해서 자기 마음속 내면세계와의 접촉이 끊어진 사람)의 꿈을 자기조절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융은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한 남자를 상담했다. 이 남자는 불안, 자신 없음, 현기증을 호소했는데, 그것은 때로 구역질, 머리가 무거운 느낌,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이 환자는 변변찮은 출신으로 중요한 위치에 올랐다. 그가 처음 꾼 꿈은 이랬다. “나는 내가 태어난 작은 마을로 돌아갑니다. 나와 함께 학교에 다닌 소작농 소년들이 거리에 서 있었지요. 나는 그들을 지나쳐 걸으면서 아는 체를 하지 않아요. 그때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나를 가리키며 ‘재는 우리 마을에 자주 오지 않아’라고 말하는 게 들립니다.” 이 환자의 두 번째 꿈은 정신없이 서둘러 여행을 떠나는데, 기차를 놓치고, 기관사가 너무 빨리 달린 결과 맨 뒤의 객차가 탈선했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이었다.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280쪽>

융은 이 꿈을 환자의 내면의 소리로 읽었습니다. 환자의 무의식은 꿈을 통해 자신의 염려를 전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분수를 알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속도 경쟁을 유발하는 지나친 욕망의 추구는 결국 탈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알립니다. 그렇게 그의 꿈을 해석한 융은 환자에게 성공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올라갈 생각을 버리고 현재의 성취에 만족하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그 해석은 환자를 납득시키지 못합니다. 꿈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환자 탓에 치료는 중단되고 맙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얼마 되지 않아서 이 환자는 정말로 ‘탈선하여’ 엄청난 불행에 처하게 됩니다. <위의 책 281쪽> 융이 강조하는 내향성과 외향성, 그리고 ‘꿈의 보정 기능’은 위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특히 중년(中年)의 위기 국면에서 유효한 관점입니다.

일생 동안 우리는 몇 번의 ‘문지방’을 넘게 되어 있습니다. 사춘기, 청년(결혼)기, 중년기, 노년기 등이 다 그런 문지방을 통과해야 하는 인생의 새 국면들입니다. 융은 40대 이후에 겪게 되는 ‘중년기 문지방’을 매우 중시합니다. 융에 따르면, 이 시기를 어떻게 넘느냐에 따라서 한 인간의 삶은 크게 달라집니다. 불혹의 성숙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도 있고 아주 축소된 자아를 소지한 채 소인배(신경증이나 정신병)로 평생 살아야 될 수도 있습니다. 융은 내향성, 외향성, 아니마(남성 속의 여성적 요소), 아니무스(여성 속의 남성적 요소) 같은 개념을 동원해서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중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설파합니다. 융 자신도 심각한 중년의 위기를 겪었던 탓에 그의 말에는 설득력과 진정성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역시 중년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무사히 잘 넘겼는지, 아니면 문지방 앞에서 주저앉은 신세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습니다. 다만, 요즘 시국을 볼 때, 우리 사회도 바야흐로 심각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중은 아닌가라는 뜬금없는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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