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천 경운대학교 벽강중앙도서관장·교수
한태천 경운대학교 벽강중앙도서관장·교수

“당신이 검사냐”

부하 검사가 직속상관 검사에게 그것도 직원 상갓집에서 직속상관을 앞에 두고 한 말이다. 이유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듣기 민망스러운 말이다.

지난 19일 언론 보도에 의하면, 검찰청 직원 상갓집에서 검찰총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검 반부패 선임연구관이 직속상관인 대검 반부패부장검사에게 “당신이 검사냐?”고 큰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기사의 말미에 의하면, 항명을 받은 직속상관인 대검 반부패부장검사는 검찰총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조 전 장관 혐의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윤 전 국장에 대한 감찰 중단 결정은 민정수석의 권한으로 죄가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직속상관의 이런 주장에 대해 불만을 품은 직속 부하 검사가 사적인 자리에서 직속상관에게 항명을 한 것이다. 항명한 검사의 입장에서야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원 가족의 상갓집이라는 사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검찰청 사람만이 아닌 일반인들도 있는 자리에서 언성을 높여 항명했다는 것은 공직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아닌 듯하다.

대검 반부패부장검사가 검찰총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특정한 사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고 해서 그것이 항명의 대상이 되는가?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사석에서 항명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의 검찰조직은 민주주의가 없는 곳인가. 상관의 자리를 이용하여 업무를 방해한 것도, 업무를 중단시킨 것도 아닌데, 단지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개진한 것이 사적 자리에서 공격의 대상이 된다면 이런 검찰조직은 루이 14세하의 궁정조직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검찰 내부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 저렇게 입으로 알려져도 되는가.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범죄 수사, 공소권 행사, 재판의 집행 등 검찰 사무의 처리에 있어서 기동성, 신속성의 요청에 부응하고 전국적 통일성과 업무 처리의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검찰 조직 내의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개진한 것이 사적인 자리에서 노출되고, 반대 의견을 개진한 검사에 대한 인신공격이 이루어진다면, 누가 검찰 내에서 반대 의견을 내겠는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런 정도의 의견 개진도 용인되지 않는다면 검찰 내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것이 이토록 경직되어야 가능한가.

그동안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검찰개혁을 요구해 왔던 것은 검찰의 ‘업무 처리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적 불만에서 시작된 것이다. 자기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었다는 국민적 분노, 특정인에 대한 차등적 수사에 대한 불만 등 검찰의 수사 행태에 대해 국민 다수는 검찰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곧 설치될 것이고,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이 조정되면 검찰의 권한은 상당히 축소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국민 절대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수사는 검찰이 그 권한을 가장 많이 행사하게 될 것이다. 지금과는 수사의 대상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 법 집행에는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업무의 신속성이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지켜져야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활동할 때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는 윤 팀장에게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충성한다는 말인가?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 아니다 “헌법주의자다. 헌법에 충성한다” 여러 가지 평이 있었다. 명백한 것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대호평을 받은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검찰총장으로서의 윤석열이 보인 수사 행태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는 국민도 많고, 비난을 하는 국민도 많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검사들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것”도 좋다. “조직에 충성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헌법주의자”라는 것도 좋다. 그것은 검사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는 검찰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검찰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엄정한 수사,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수사, 이런 면에서는 이미 국민에게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하면서 “어떤 사건에 대해 선택적으로 열심히 수사하고, 어떤 사건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요즘 일어나는 많은 일은 검찰 스스로가 성찰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의 공정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검찰이던 경찰이던, 모든 공직자는 “개인에 충성”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 도덕적이지 못하거나 합리적이지 못하다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조직에 충성”해서도 안 된다. 조직이란 두 사람 이상이 모여 공동 목표를 달성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역시 사람의 활동체다. 조직 또한 개인과 유사한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다. 그래서 공직자는 “헌법에 충성”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헌법 제1조2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헌법 제11조1항)”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헌법에 충성을 해야 한다. 아울러 “법은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것을 명심해야 한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절차적 공정성을 주장하였다. “절차적 정의를 통하여 공정성이 확보되면, 그 결과도 정의롭다.”고 했다. 그는 정의의 원칙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유를 누려야 하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 누구나 자신의 역량에 따라 그 차이를 인정받는 “차등의 원칙”, 최소한 인간적인 삶을 위한 “기회균등의 원칙”을 들었다. 이러한 원칙을 통하여 공정성이 확보된다면 그 결과도 정의롭다고 했다. 존 롤스의 절차적 공정성을 준용해 보자. 만약 대검 조직 내부 회의에서 의견개진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사람에 따라 제한된다면, 주류가 아니어서 기회를 박탈당한다면, 소수의 의견이라서 외부로 누출된다면 이는 존롤스가 생각하는 절차적 공정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지금의 검찰이 공정성에 신뢰를 잃고 있다면 정의롭지 못한 검찰이 되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검찰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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