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생 담담히 반추 "슬픔 비길 진실 없어"

김성춘 시인 13번 째 시집 ‘아무리 생각해도 먼 곳이 가까웠다’

김성춘 시인이 13번째 시집 ‘아무리 생각해도 먼 곳이 가까웠다’(시와반시 기획시인선)를 냈다. 1974년 시 전문지 ‘심상(心象)’의 첫 신인상 수상자인 김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시집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슬픈’ 사연들이 많다.

김 시인은 시집 뒤편에 붙인 김기택 시인과의 대화 형식의 글에서 “이번 시집에는 유난히 ‘먼 곳’에 대한 시편들이 많이 눈에 뜁니다. 그것은 제 나이 탓도 있겠지만 시에서는 무엇보다 슬픔에 비길만한 진실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썼다.

산모롱이를 돌아 사라진 기차와 벼가 시퍼런 여름, 들오리 한 쌍이 헤엄치는 것을 바라보는 다중 오버랩의 시 ‘들오리 기차’의 뒷부분은 보자. “…//70대 노 부부 같은 황혼/ 들오리의 어깻죽지까지 내려와 있었다/ 10량짜리 삶이 지나가는 소리가 벼 포기마다 싱싱했다// 나는 잘 못 산 시행착오 앞에서/ 고아처럼 서성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먼 곳이 가까웠다// 괴롭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던 구름 아래 시간들/ 들판의 먼 아지랑이 같은,/ 구름 아래 슬픈 음악 같은.” 한여름 황혼의 들판을 바라보며 담담히 시인은 지나온 생을 반추(反芻)하고 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삼십 년// 형님은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 어제는 요양원에 형님을 찾았다// 갈 때마다 여위어지는 달의 가슴뼈// 마른 장작 같았다// 침대 끝에 딱 붙은 찌그러진 저 달// 나를 배웅도 하지 못한다// 돌아오는 시외버스 차창// 배웅도 못한 달의 뼈가 흐르다// 저 달,// 나는 아직도// 달의 뒷면을 모른다”(‘달의 뒷면’ 전문)

요양원의 형님을 찾아갔다 돌아오는 차창에 앙상하고 창백한 낮달이 걸려 있었을 것이다. 시간의 완력 앞에 찌그러진 달, 배웅도 못하는 달의 뼈를 그리고 있다. 창 밖을 바라보며 꾹꾹 울음을 참았을 시인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지는 시다. 한 행이 한 연처럼 띄어 쓴 이 시에는 슬픔의 그림자가 역력하다.

김 시인은 시 ‘말의 내면(內面)-쓸쓸해서 따스한’에서 //“밥이나 한번 같이 먹자”/ 쓸쓸해서 오히려 따뜻해지는/ 이 말,/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라며 누군가를 사랑해서 술 마시고, 누군가가 그리워서 아파하면서 이렇게 스스로 쓸쓸하고 따뜻한 만남을 약속하고 있다.

김 시인은 이번 13번 째 시집에 실린 시는 그야말로 슬픔과 비애를 교직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경지를 보여 준다. 지극(至極)한 사랑처럼 아름다운 것에는 슬픈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김성춘 시인의 시집 ‘아무리 생각해도 먼 곳이 가까웠다’에 실린 한 편 한 편의 시들이 그렇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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