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골 청년, 35년 외길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분야"

포스코 EIC기술부 정규점 부장.
경남 산골 청년, 철의 명장이 되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을 꼽으라면 단연 쇠(철)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쇠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원전 4000년께로 올라가지만 인간이 쇠를 불리고 무기나 생활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한 소위 철기시대는 기원전 1000년대 전후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500년대를 철기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있지만 동북아를 호령했던 고구려의 ‘개마무사’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철기문화를 자랑한다.

개마무사란 말 전체에 비늘철갑을 둘러 전장을 누비도록 하는 철기군을 말하는 것으로, 현대의 전차나 다름없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 제철 기술로는 비늘철갑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 조그만 도가니로 쇠를 만들던 제철기술로는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2000년 가까이 지난 1973년 대한민국은 산업 중흥의 기반인 현대식 용광로를 갖춘 포항종합제철이 첫 쇳물을 쏟아냈고, 이후 불과 50년도 되지 않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포항제철은 이후 글로벌 제철기업으로 성장해 포스코로 명칭을 바뀌었고, 포스코에는 세계 최대 용량을 자랑하는 광양 1고로(6000㎥)를 비롯 초대형 고로만 5기를 가동하는 세계적인 철강회사가 됐다.

여기에 포스코는 올해 용적 4600㎥인 광양 3고로를 5500㎥로 바꾸는 개수작업에 들어가 6번째 초대형 고로를 갖추게 된다.

포스코가 쇳물 생산 47년 만에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데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인재들이 끊임없는 연구개발에 집중해 왔던 덕분이다.

이런 노력 끝에 포스코에는 산업인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명장을 비롯 포스코 명장 등 철강산업과 관련된 장인들이 즐비하다.

2019년 경상북도 최고 장인으로 선정된 정규점씨(59·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전기기술섹션 부장)도 그들 중 1명이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정규점 부장은 1978년 마산공고 전기과를 졸업한 뒤 서울 소재 중소기업에서 2년 3개월간 근무하던 그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회사를 퇴직하고 동의공업전문대에 입학, 전기분야 전문가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군에 입대해서도 전기공부에 몰두한 그는 군 복무중 전기기능사 1급 자격을 따낸 뒤 1985년 포스코에 입사해 제철보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 철강 외길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기분야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쉽지 않았을 것인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마산공고 전기과를 들어갔었는데 졸업 후 산업현장에서 전기 분야 전문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일이 평생의 업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특히 포스코에 입사한 뒤 지난 1992년 창원기술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 현장실무와 핵심적인 이론을 접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제철산업 특성상 용광로는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되는 데다 그 기반이 전기설비에 있는 만큼 단 한 번의 전기고장은 곧 엄청난 손실을 불러 오기에 전기분야 정비부서는 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그러다 보니 끊임없는 긴장과 연구·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그 결과물이 쌓여 오늘의 제가 있는 듯 합니다.

◇35년간 근무하며 숱한 실적과 성과를 거둬왔을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많을 듯 한데.

회사 측 지원으로 창원기술대 졸업 후 전기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여러 노력 끝에 △제철공장에 특화된 전력계통 보호시스템 엔지니어링 기술 및 시운전 기술 △전력설비 트러블 슈팅 기술 △전력 인프라 설비 정밀 진단 및 수명 예측기술 △제철소 정전 및 전기화재 예방과 복구 기술 등의 숙련기술을 갖추게 됐다.

그런 노력 끝에 지난 2018년 현장기술인력으로서 부장으로 승진하는 영광도 얻게 됐다.

하지만 전기분야는 늘 새로운 해결과제를 요구받기에 오늘에 안주하기 보다는 내일의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제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들을 후배들에게 잘 전수할 수 있도록 교육자료를 개발하는 게 포스코에 대한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개인적으로는 전기분야 기술사 자격을 취득해 후배들에게 ‘하면 된다’는 비전을 제시해 주고 싶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 일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다시 젊은 시절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저는 군인의 길을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국가 기간산업인 제철 산업에 제 모든 것을 바치는 게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철소 설비 장애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것과 후배들에게 이를 잘 전수해 줘 포항제철소가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게 마지막 명령이자 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을 건데. 가장 기뻤던 일과 가장 안타까웠던 일을 꼽는다면.

지난 2008년 ‘올해의 포스코인’으로 선정됐을 때가 가장 기뻤던 것 같다.

매년 선발 안내는 봤지만 저하고는 거리가 먼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저를 인정해 준 것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리고 광양제철소 2제강 화재복구·중국 청도 ZRM공장 화재 복구 시 며칠 동안 밤을 세워 가면 작업한 뒤 재가동 소리가 들렸을 때는 전율이 느껴질 만큼 행복했습니다.

지난 2005년 2열연공장 화재 복구 시 약 1주일간 밤낮 없이 작업을 하다 운전 중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았을 때와 2006년 같은 부서 선배님이 지병으로 휴직 후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힘들고 슬펐던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이나 직장에서의 철학이 있다면.

책임감과 끈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책임진다’는 각오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늘 고민하고 대응책을 세워 실수는 줄이고 신뢰는 높여 왔습니다.

업무 및 전기관련 자료나 지식들을 끊임없이 수집하고 정리한 뒤 연구 하다 보니 자기계발은 물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특히 중요한 장애 발생 시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결과물을 찾아낼 때까지 기술적인 이론에서부터 현장실무까지 끊임없이 추적하는 끈기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는 가장 열정적인 직원이었지만 그만큼 가족들에게는 소홀함이 많았을 것인데.

포스코에 입사한 뒤 ‘직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자’는 철학으로 살아오다 보니 집안의 경조사는 물론 여러 가지 계획들에 참석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특히 한밤중이나 새벽에 긴급업무지원 요청이 올 때마다 먼저 일어나 “밤새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급했으면 지금 전화를 했겠냐”며 힘을 실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 늘 함께 해주지 못했음에도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들과 딸에게도 감사하며, ‘어디서든 정직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올바른 길을 걸어가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불근학 노후회(少不勤學 老後悔·젊어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분야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항상 남보다 일찍 일어나 계단을 걸어 오르면서 신 새벽을 열어왔습니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건강도 좋아지지만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으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인생은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으로 노력하다 보면 모두로부터 신뢰받는 진정한 전문가 된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종욱 기자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정치, 경제, 스포츠 데스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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