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년 팔공산 정상에 앉아 간절하 중생의 마음 만져주네

간절히 원하면 한가지 소원은 이루어준다는 갓바위

 


공기 중에 아주 작은 물방울이 떠다닌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미세한 입자가 마음으로 전해진다. 모든 게 안개구름 속에 숨었고 세상은 촉촉하다. 어느 화가의 수채화에서나 나옴직한 고즈넉한 길을 천천히 풍경을 즐기며 걸었다.

 

구름안개에 갇힌 팔공산

실루엣으로 존재하는 숲의 깊은 곳에서 새가 운다. 너무 맑으면 안 봐도 될 것까지 봐야 하지만 안개가 짙으니 최소한의 것만 보거나 보여도 되니 좋은 면도 없잖아 있다.

갓바위 입구
팔공산 둘레길 코스

팔공산 안내센터와 마주하고 섰다. 직진을 하면 갓바위이고 왼쪽으로 가면 자연식물원이다. 둘레길을 가려면 이곳에서 왼쪽 길을 가야 하지만 여행의 참맛은 ‘마음 가는 대로’ 가 아닌가.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이라. 궤도 이탈이 아니라 규정화된 틀에서의 해방이다.

중간 지점

무엇보다 팔공산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갓바위가 코앞이니 먼저 들리는 게 예의가 아닐까 싶다. 공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지만 머리 위에 사각의 돌이 얹혀 그 모습이 마치 갓을 쓰고 있는 것과 같다하여 갓바위로 통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학사모와 닮았다 하여 입시철이면 자녀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전국의 학부형 수만 명이 찾는다.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갓바위

그분을 뵈러 가는 길은 정상에 가까울수록 비탈져 힘이 들지만 지칠 만하면 에너지를 솟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풍경에 매료되어 시간이 존재하지 않은 세계에 갇힌 기분이다. 찰나에 청솔모 한 마리가 상수리나무를 타고 쏜살같이 내려온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울퉁불퉁 솟은 바위틈에 잠시 몸을 숨겼다가 잽싸게 나무 사이로 사라진다. 귀를 쫑긋 세우고 여기저기를 기웃대는 걸로 보아 숨겨둔 도토리를 찾는 모양이다.

관암사

녀석이 도토리를 찾아 맛있게 먹기를 바라며 비에 젖은 나무를 툭 쳐본다. 수분을 흠뻑 머금은 수피가 푹신하다. 문명사회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온 느낌이 들쯤 관암사에 도착했다.

묵언수행하며 한 계단씩

지금부터 1365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분을 만날 수 있다. 그만한 수고는 해야 만날 수 있는 분이다. 계절과 눈비에 아랑곳없이 천년의 세월 동안 850m 높이의 관봉에 앉아 근엄한 얼굴로 중생을 굽어보고 계신 분.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걸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대구 MBC에서 갓바위에 관해 다룬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손 모양이나 머리에 쓴 갓, 옷차림을 두고 아비타불이다 미륵불이다, 약사여래불이다, 학자들 간에 논란이 분분하다. 영남불교문화연구원 김재원 선생은 24방향으로 나뉘었을 때 동남쪽 방향으로 향하는 건좌손향(乾坐巽向)이니 아비타불이라 했고, 국립공주박물관 박방룡 선생은 머리에 쓴 것이 조선시대 갓 모양이라 미륵을 염두에 두었을 거라고 했지만, 선본사 도감 스님은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약사여래불로 믿어왔으니 앞으로도 쭉 믿음대로 갈 것이라 했다.

사실 갓바위 부처님 왼손에는 약사여래의 지물인 약합이 없다. 손 모양 또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항마촉지인은 좌선할 때 오른손을 무릎에 얹고 손가락은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이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성취한 깨달음을 지신이 증명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고려나 삼국시대 불상에서 항마촉지인을 한 아미타불이나 약사여래가 더러 발견되고 있어 손 모양만으로 갓바위 돌부처의 정체성을 밝히기는 어렵다는 견해다.

풍경소리

그분을 생각하며 한 계단씩 오르는데 갑자기 뭐가 중한가, 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 분명 학자들에게는 중대한 논쟁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갓바위는 전국 각지에서 남녀노소 상관없이 불자가 아닌 일반 시민도 많이 찾는다. 그들에겐 그가 미륵이든 아미타불이든 약사여래불이든 크게 상관이 없을 수 있다. 그저 그곳에 그분이 계신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천 년이란 긴 시간을 지나는 동안 갓바위 돌부처님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바로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국시(國是)로 채택된 숭유억불정책(崇儒抑佛政策)때문이다. 불교탄압이 계속되면서 불자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방치된 채 시간의 더께가 쌓여가는 불상 앞에서 무속인이 굿을 하고 마을 주민들은 기우제를 지냈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 앞에 불을 피워 부처님을 까맣게 그을리기도 하였다. 그리하면 호법룡(護法龍)이 비를 내려 씻겨 드릴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유명세를 탈수록 정체성과 유래에 관한 연구도 심화되었다. 소유권 분쟁에 휘말린 적도 있다. 중생처럼 부처님도 유명세를 치른 셈이다. 자신에 관한 여러 논란을 지켜보며 갓바위 부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계단을 다 올라와 마주한 부처님은 언제나처럼 양 어깨를 가린 통견(通肩)차림으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계신다. 그 앞에 서면 불자가 아니어도 자동으로 허리를 굽히게 되는 건 왜일까.

경자년에 모든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범접할 수 없는 위엄 아래에 두 손을 맞대고 단정히 앉았거나 108배를 하는 사람들. 몸을 깊숙이 숙이고 다리가 아프도록 절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간절함이 읽힌다. 아침마다 스마트폰이 깨워주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날씨를 알려주고 뉴스도 읽어주는 세상이지만 오늘도 사람들은 부처님 전에 촛불을 밝히고 바위에 동전을 붙인다. 바위에 동전이 붙으면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소원을 환하게 밝히고 촛불들.
동전이 붙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인공지능(AI)이 커피를 내리고 계란 프라이와 식사 준비를 해주고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세상이 와도 이곳을 찾는 사람 수는 줄어들지 않을지 모른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나 과학기술의 편리성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문명이 상상 이상으로 발전해도 기계가 사람의 마음을 만지고 위로해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고도의 과학기술이 행복지수를 높여준다면 현대인은 100년 전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과학기술이 이성이라면 마음은 감성이다. 인간의 고유한 몸속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신경혈관보다 민감하고 미세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에게 문득 질문을 던지고 싶을 때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인간의 능력 밖,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우주의 심오한 에너지에 기대고 싶음이다.

임수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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