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총선이 두 달 남았는데 투표용지에 오를 정당의 이름은 오락가락 이다. 주요 정당들이 거의 이름을 바꾸는 중이고 없던 당이 생기자마자 없어지며 심지어 위성정당까지 등장했다. 한국의 음악, 영화, 스포츠의 수준은 일취월장하여 세계를 호령하는데 떴다방 정치의 못된 습관은 도무지 없어질 줄 모른다.

선거를 눈앞에 두고 이합집산을 하면서 정당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떴다방 정치다. 이런 행태는 무엇보다 자신들 고유의 정치적 소신이나 철학이 애당초 없었음을 증명한다. 이름이란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구축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몇 년에 한 번씩 개명을 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름을 바꾸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숨겨서 상대방을 속이겠다는 심보다. 옛날 철학자들은 뜻을 펼치려 어쩔 수 없이 가명으로 책을 쓰기도 했다지만, 보다보다 지겨운 인물들이 멀쩡한 간판만 바꾸는 것은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대충 덮어보겠다는 얕은 수작이다. 모두 유권자가 우스워 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는 작년에 개정된 선거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위성 정당까지 만들어서 자기 당 비례대표 의원을 일부러 제명하고 탈당과 입당을 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무능 때문에 입법 과정에서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해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입법 의도를 마구 폄훼해도 되는가? 이는 기업에 가격 협상에 실패했다 해서 공정을 바꾸어 일부러 불량품을 생산하는 것 같은 범죄요 기망이다.

각 정당이 좀 유명하다는 인물들을 앞세우고 장기판 졸처럼 여기저기 지역구에 임의로 공천하는 것도 후진적인 떴다방 정치의 전형이다. 선거가 임박해서 외국에서 갑자기 귀국해 당을 만들고, 주민등록지를 옮기고, 약간의 인지도가 있다 해서 이리저리 공천을 하면 어떻게 민의를 대변하고 지역구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 40년 전 고등학교를 어디서 나오고 어디서 자취를 했으며, 자기 외할머니가 그 지역 출신이라 강변하는 것은 빛의 속도로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너무나 안 어울리는 코미디다. 그들의 향수는 오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아무리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삶의 치열함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행태가 반복되어 너무 당연해지는 바람에 지역에서 묵묵히 발품을 팔고 시민을 대변하려 노력하는 정치인은 없어지고 높은 사람에게 잘 보이거나 방송에 나가 헛소리 하는 사람만 늘어난다.

떴다방 정치가 없어지지 않은 것은 결국 유권자의 책임이다. 선거 직전 당 만들고 이름 바꾸고 이사하고 머리 숙이다가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갑질과 사욕추구로 돌입하는 자들을 너무 오래 참았다. 뜬금없는 비장함으로 나라의 흥망과 체제 논쟁을 일삼는 거대담론에 속아 투표를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그런 바람몰이에 떴다방 사기꾼만 흥하는 걸 한두 번 보았는가.

해결책은 간단하다. 냉혹한 정치 소비를 해야 한다. 봉준호 감독과 방탄소년단이 성공한 것은 대한민국 영화와 음악의 앞날을 걱정하는 거창한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 재미없는 영화, 질 낮은 음악은 보지 않고 듣지 않는 냉혹한 문화 소비가 오늘의 한류를 만들었다. 막연한 나라 걱정과 이념 투쟁의 바람에 휩쓸려 정기적으로 자신을 부정하는 정치집단에 눈을 돌리는 건 바보짓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꼼수와 거짓말, 막연한 진영논리와 혐오발언을 즐기는 인간들이 경제를 살리고 안보를 굳게 하고 정의를 지킬 리 없다. 스스로 물갈이를 하겠다고 출렁대는 썩은 물을 통째로 내다 버리고, 낙선할망정 내 지역의 현안과 오늘 당면한 삶의 문제에 공감하는 정당과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