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역아닌 외교조치로 판단…외교부 "의도 의심"·강경화 "배경에 의문"
‘중국은 놔두고 일본에만 맞대응’ 지적도…한일관계 또다시 격랑 속으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초치된 도미타 고지 주한일본대사와 면담하고 있다. 일본은 전날 한국에서 들어온 입국자에 대해 14일간 대기, 무비자 입국 금지, 입국 금지 지역 확대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연합
정부가 6일 일본 정부가 전날 발표한 한국인에 대한 입국제한 강화 조치에 즉각 사실상의 보복 조치에 나선 것은 일본의 조치를 순수한 방역 목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역 선진국인 일본이 제대로 된 사전협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사실상의 한국인 입국거부에 나선 것은 ‘비우호적’이며 ‘비과학적’인 행동이라는 것으로, 정부 안팎에선 “일본한테 뒷통수를 맞았다”는 격앙된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 등 다른 국가들에는 상응조치를 검토하지 않으면서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대응한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날 밤 일본에 대해 무비자 입국 금지, 이미 발급된 비자의 효력 정지, 특별입국절차 적용, 여행경보 2단계로 상향 등의 상응조치를 발표했다.

일본이 전날 한국과 중국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 금지와 14일간 격리 등의 조처를 발표한 지 만 24시간만에 비슷한 수준으로 즉각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일본은 이런 조치를 일단 이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힌 반면, 한국은 종료 시한도 제시하지 않았다. 일본이 먼저 조치를 중단해야 한국도 관련 조치의 중단을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지금껏 100여개 국가·지역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다양한 입국제한 조처를 했지만, 한국이 보복 성격의 상응조치를 취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특히 중국도 상당수 지역에서 한국인에 대해 격리 조처를 하고 있지만 상응조치가 없었다. 일본에 대해서만 유독 강경 대응을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외교부가 이날 일본 정부의 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담담한 반응을 보인 것과도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일본이 조치를 취한 방식 등으로 미뤄볼 때 순수한 방역 목적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여러 계기에 이런 입장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이날 오전 발표한 입장문에서 “우리의 우수한 검사·진단 능력과 투명하고 적극적인 방역 노력을 전 세계가 평가하고 있고, 확산방지 노력의 성과가 보이는 시점에서 취해진 조치라는 점에서 방역 외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일본의 조치가 “매우 부적절하며 그 배경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일본의 조치가 (방역이 아닌) 외교적 성격의 조치라고 보고 우리도 외교적 성격의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일본 조치의 이유를 국민 불안감이라고 했다”면서 “비과학적 조치라고 스스로 말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일련의 발언들은 일본이 방역 목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고 정부가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방역 목적이라면 일본이 긴밀한 조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전 통보는 했어야 했다는 게 외교부 당국자들의 지적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일본이 조치를 발표하는 경과라든가 협의를 하는 과정이 비우호적이었다”면서 “결정이 되기 전에 중간단계에서 발표하고 발표한 내용도 뭔가 명확하지 않아서 불러서 설명하고 추궁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상응조처를 발표하면서 “정부는 사전협의나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일본 측의 이번 조치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코자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의도와 관련,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에서의 방역 실패 등으로 비판받는 아베 총리가 일본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고 더 나아가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을 한국 등에 돌리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 설명이 매끄럽지 못 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전협의가 없었기는 했지만 관련 조치가 9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한국에 입국제한 조치를 취한 100여개국 중에서도 한국에 사전통보없이 조처를 한 나라가 일본만은 아니다.

또 ‘국민 불안감’을 잠재우는 것도 방역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볼 수 있고, 일본 입장에선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는 한국으로부터의 여행객 유입이 불안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한국 정부가 일본에 대해서만 강하게 맞대응한 데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올 수 있다.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 등으로 지금껏 쌓인 게 있지 않으냐”라고 말했다.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냉랭한 한일관계 상황이 일본에 강력히 대응하는 배경임을 시사한 것이다.

중국에 대해 상응조치를 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설명을 내놓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외국의 조치가 해당 국가의 방역능력 등을 고려할 때 수긍이 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중국은 방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격리 조치가 부당함에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선진국인 호주에 대해선 왜 상응조치가 없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선 외교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한일관계와 한·호주관계가 같을 수가 없으며 양국의 코로나19 상황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사실상의 ‘입국거부’ 조처를 한 데 대해 한국이 곧바로 맞대응하면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으로 격하게 대립하다 지난해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계기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한일관계가 다시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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