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를 크게 일군 3대 최국선(1631~1682)은 임종을 맞아 아들을 불러 놓고 서랍 속에 있던 빚문서를 가져오게 했다. 그는 “토지나 가옥 문서를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고, 돈을 빌려준 차용증서는 불태워라. 돈을 갚을 사람이면 없어도 갚을 것이다.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담보가 있어도 갚지 못한다. 형편이 안 되는데 문서를 뺏어 뭐하겠느냐”라며 선행을 베풀었다.

경주 최부자는 1대 최진립에서 최준까지 12대에 걸쳐 300년간 만석부(萬石富)를 누린 명문가다. 경주 최부자가 수 세기의 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부자 가문의 가르침인 ‘육훈(六訓)’에는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훈육 조항이 있다. 최부자 집은 이 육훈의 실천으로 다른 지주들이 70~80%씩 떼가던 소작료를 절반 정도만 받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소비가 극도로 위축돼 소상공인들이 대 흉년의 농민 신세로 전락하자 상가 주인들이 임대료를 깎아주거나 면제하는 ‘착한 건물주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최부자 DNA’를 가진 건물주들이 어려움에 처한 상인들 돕기에 나선 것이다.

‘착한 건물주’는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를 본 대구의 서문시장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 서문시장 70대 상가 건물주는 자신의 상가에 세든 20여 명에게 ‘고통을 같이하는 의미에서 한 달 간 월세를 받지 않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착한 건물주 운동’은 대구의 수성구 유원지 주변, 중구 용덕동 보석상가 등은 물론 경북의 포항 죽도시장, 경주 중앙시장, 안동 중앙신시장, 김천 평화시장 등 상가 주인들이 월세를 안 받거나 감면해 주고 있다. 이 운동은 경북과 대구 뿐 아니라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건물을 가진 유명 연예인들도 잇따라 ‘착한 건물주’로 이름이 불리고 있다.

IMF사태 때 나라 빚 갚기 ‘금 모의기 운동’처럼 우리 민족만이 가진 어려운 때에 서로 도와 어려움을 극복하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최부자 DNA’가 발현되고 있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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