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진리란 결국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여기는 권력관계를 의미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의 말이다. 이것은 상호 간 쟁점이 되는 역사의 진실 여부에도 마땅히 해당된다. 토인비가 갈파했듯이 역사는 승자의 몫인 경우가 다반사인 탓이다.

언젠가 워싱턴에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도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K스트리트 일대는 소위 로비스트가 몰리는 구역이다. 무기와 스캔들로 부정적 어감이 강하나 미국에선 엄연한 합법적 청원 활동. 임기가 끝나는 상하원 의원 절반가량이 로비업에 종사하고, 공식 등록된 로비스트가 만 명이 훌쩍 넘는다. 민중의 울음보다 이들의 속삭임에 정책이 좌우된다고 개탄할 정도로 활발하다.

한·중·일 과거사도 막후교섭의 대상이라니 황당하다. 삼국 공히 수십 안건을 로비 회사에 맡겨 자국의 입장을 설득한다. 강대국에게 마치 판관처럼 옛일을 재단하는 능력은 누가 부여했는가. 객관적 사실이면서도 세계관에 따라 흐름이 달라지는 역사의 속성을 보여주는 일례다.

앙드레 모루아의 ‘프랑스사’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역사관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예부터 프랑스 민족을 갈리아 또는 골족으로 불렀다. 수탉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프랑스는 닭을 국조로 삼는다.

로마제국의 카이사르는 기원전 58년부터 갈리아 전쟁을 수행했다. 장장 8년 동안 벌어진 원정. 모루아는 저서에서 신랄하게 비난한다. 골족을 가혹하게 다루었다고. 재산을 빼앗고 포로로 팔았다고. 독립전쟁을 참혹하게 진압했다고. 로마의 무기로 골족을 정복하고 그들의 재물로 로마를 장악했다고.

한데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시오노의 책을 펼치면 긍정적 시각으로 바뀐다. 야만의 땅으로 불리던 갈리아를 문명화하고 팍스로마나에 의한 평화를 선물했노라고. 로마 시민권과 작위 수여로 회유한 카이사르의 관용이 돋보였노라고.

똑같은 역사적 사건을 두고도 저자에 따라 평가가 판이한 점이 놀랍다. 그렇다. 어차피 전쟁은 비극적이고 얼마나 합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술자 역시 자기가 속한 국가와 개성적 관점에 영향을 받지 않으랴.

우리 지역 구미의 ‘박정희 대통령 생가’ 초입엔 기념비가 놓였다. 무궁화 문양이 조각된 화강암 기단에 세워진 석비. 1961년 5월 군사혁명을 위해 상경하면서 남긴 글이라 소개됐다. 국민과 향토 선배께 올리는 짧은 글귀엔 거사를 앞둔 사나이의 충심과 결연한 다짐이 물씬하다.

문득 루비콘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친 카이사르가 오버랩했다. 두 남자는 성사가 불투명한 난국에 승부수를 던진 장군이란 공통점을 가졌다. 지난 3월 15일은 서양인에게 극적인 하루로 꼽힌다. 고대 로마의 뛰어난 정치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날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753년 건국돼 무려 1229년을 존속한 로마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은 막중하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초석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제국 정치의 궤도를 깔았다. ‘로마인 이야기’ 총 15권 중 2권은 그를 다뤘다.

그는 문무겸전 지도자였다. 갈리아 전쟁기와 내전기는 탁월한 필력이 발휘된 명저다. ‘리더의 자질은 지성·설득력·지구력·자제력·불굴의 의지가 요구된다. 카이사르만이 모두를 갖췄다.’ 이탈리아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나온다. 총선을 앞둔 선량들 깜냥 덕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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