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마음 달래주는 바람·새소리 가득한 산자락으로

마음을 비우고 솔바람 소리에 집중하는 길

하늘이 높다. 구름 한 점 없다. 가을 하늘만 공활한 게 아니다. 3월 하늘도 그러하다. 대신 바람은 세차다. 귀한 것일수록 그저 얻어지는 법이 없다는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꽃이 피고 새싹이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게 그만큼 어려운 거다. 바람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통째로 뽑아 가 버리길 바라며 팔공산 자락 아래에 섰다. 일부러 거리두기를 하지 않아도 이곳은 바람과 나무, 새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미곡마을서 출발
미곡마을을 배경으로

미곡동 자라미 입구에서 출발했다. 소나무 숲길이 이어졌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작년 가을에 떨어진 이파리가 잘 튀겨진 과자처럼 바삭거렸다. 소리가 맛있어 일부러 활엽수가 쌓인 곳만 골라 밟았다. 애매한 표목으로 인해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느라 한참을 헤매다 왼쪽 도로로 내려섰다. 길과 어깨를 맞춘 개천엔 물이 졸졸 흐르고 논두렁엔 봄이 파릇하다.

활엽수가 융단처럼 깔린 길
사자바위 방향

사자바위라 적힌 표목을 따라 동산에 오르니 진달래가 반긴다. 힘내라 응원해 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꽃을 피웠다.

애썼다 꽃 피우느라

예쁘다. 애썼다, 말해준 뒤 좁다란 숲길로 들어섰다.

물넘재&부남교

미곡동에서 물넘재 지나 부곡교로 이어진 길은 정말이지 길이 완만하다. 가파른 오르막도 아찔한 내리막도 없다. 숲이 지나치게 빽빽하지도 않다. 일생을 큰 풍파 없이 살아온 사람의 일대기를 보는 듯하다.

사색의 길

옛날엔 재 너머 마을이 많았다. 동산 하나쯤 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어머니도 이런 재를 넘어 이웃마을에 떡을 팔러 갔다. 하지만 떡을 팔러 갔던 어머니는 호랑이에게 떡과 옷을 모두 뺏기고 몸도 먹힌다. 어머니의 옷으로 위장한 호랑이는 오누이를 찾아가지만 오누이는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타고 오르다 수숫대에 떨어져 죽는다. 권선징악에 아주 충실한 스토리다.

전래동화를 생각케 하는 길

대부분의 전래동화나 민담은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새롭게 각색되거나 재해석될 때가 많다. 그것이 어른 동화가 되었을 때는 폭력성과 잔혹성마저 가미된다. 가령 달이 된 동생과 오빠가 서로 해가 되겠다고 다투다 오빠가 동생 눈을 찔렀고 미안함에 오빠는 동생에게 해 자리를 양보한다. 해에게 흑점이 있는 건 그 때문이라 했고, 한편에서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근친상간으로 그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동생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부담이고 수치였다. 그래서 더 강한 빛을 쏘아 쳐다볼 수 없게 했다.

옛날 옛날로 시작되는 어린이 전래동화 대부분은 선과 악의 구도에서 선이 승리하는 모티브다. 팔공산에도 신화와 민담, 전설이 많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처럼 새롭게 각색되기도 한다. 길이나 마을에 스토리가 입혀지면 더 흥미진진해진다.

왕건길 표석

왕건길도 마찬가지다. 견훤과의 싸움에서 왕건이 참패하면서 아끼던 부하를 잃고 도주한 경로다. 왕건은 그날을 떠올리기 싫겠지만 후손에겐 교훈이자 역사며 상상력의 근원지다. 영웅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카타르시스를 길을 통해 다시 느끼고 싶은 마음도 크다.

무엇을 잘못했기에 물구나무를 섰을까

중심재 가는 길에 물구나무 선 소나무와 마주했다. 머리를 땅에 박고 정말 거꾸로 섰다. 주변에 노송 몇 그루가 있다. 시간의 굳은살이 범상치 않다. 저것이 진정 노송의 위엄일까. 어린 나무가 철없이 까불대다 혼나고 있는 것 같다. 슬쩍 지나며 노송이 눈치 채지 않게 쓰다듬어 주었다.

달성서씨중심제 가는 길
달성서씨재실

묵연(默然) 길은 달성서씨 재실 중심재(中心齎)에서 수행하던 박정석 거사가 만들었다 한다. 2년 넘게 삽과 곡괭이로 언덕을 파고 다졌다니 그 과정이 수행이었을 것 같다. 부락에 위치한 재실은 대문이 굳게 닫혔고 사나운 개가 펄쩍펄쩍 뛰며 짖었다. 한식(寒食)때면 후손들이 모인다고 동네 아주머니가 말씀해 주신다.

친절한 표목

그 앞에 왕건 길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다. 대구 올래길, 왕건 길, 둘레길이 이름은 다르지만 실핏줄처럼 서로 엮어 있다고 보면 된다.

멀리 비로봉이 보이고

마을 뒤로 비로봉 철탑이 보인다. 용수동엔 옛날 지장사란 절이 있었다. 근처 동굴에 용이 살았는데 어느 날 용굴 앞의 물(龍水川)을 마신 뒤 승천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초에 당산에서 동신제(洞神祭)를 올렸다. 용은 상상 속 동물이자 민간신앙에서 수신(水神)이며 풍농(?農)의 신이다. 영적 존재로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책임진다고 믿었다.

부남교

 


부남교 근처엔 미나리를 재배하는 농가와 카페, 현대식 주택이 오래된 집과 오밀조밀 어우러졌다.

 

돌담에 개나리가 피고

보기 드문 돌담이라 눈보다 마음이 먼저 갔다. 이 모습 오래 유지했으면 하는 건 책임감 없는 여행객의 욕심이리라. 어느 날 갑자기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부남고개&내당고개
부남고개 혹은 내당고개라 함

내동재 혹은 부남재로 지칭되는 고갯길은 마른 낙엽이 융단처럼 깔렸다. 고갯길이지만 고려시대 개경에서 조성한 초조대장경은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금호강을 이용하여 불로동과 봉무동으로 이운(移運)한 뒤, 고개를 넘어다니기 쉽게 절토했다. 때문에 평지나 다름없다. 칠곡과 문경, 대구 사람들이 부인사로 갈 때 지름길로 이용했고 영천과 청통 사람들은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을 오갈 때 이 길로 다녔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 선 내동고개

고개를 넘으면 내동(內洞)이다. 순흥안씨(順興安氏) 씨족이 450여 년 전에 뿌리내린 곳이다. 정착할 곳을 찾던 그들이 우연히 이곳까지 왔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좌우가 산이 감싼 형태인데 그 안이 참으로 포근하고 아늑해 보였단다. 미대동의 속 골짜기란 지명답게 마을은 고요했고 밭고랑을 타고 앉은 농부의 손은 바빠 보인다.

내동 터줏대감 당나무

마을 입구에 순흥안씨 선조가 심은 당나무는 오백 살을 훌쩍 넘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추산공유적 안정자비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개인뿐 아니라 전 세계가 휘청대지만 위기는 성장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자발적 거리두기로 시련은 머잖아 극복될 것이다. 어수선하고 불안한 상황에도 봄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햇살이, 바람이 참 고맙다.

글·사진 임수진 수필가
글·사진 임수진 수필가

◇팔공산둘레길 2구간(4.5㎞)· 3구간(1.5㎞)

△2구간 상세코스
팔공문화원-미곡동-용수동-묵연길-부남교 = 소나무숲길이 2.6㎞이어진 뒤 행선길로 이어진다. 4월쯤에 진달래가 절정이다.

△3구간 상세 코스
부남교-부남재-내동마을 = 논길과 절토한 고갯길이 전래동화를 떠올리게 해 인상적이다.

△교통편 : 내동마을 입구에서 지선과 급행 이용하면 된다.

팔공문화원에서 부남교 가는 길
묵연길의 초입
글·사진 임수진 수필가
온라인뉴스팀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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