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 때였다. 예루살렘국의 군주 뤼지냥은 사막을 가로질러 술탄 살라딘이 이끄는 투르크군을 치기로 했다. 철갑옷으로 무장한 십자군이 한낮에 열사를 횡단한다는 것은 자살골이나 다름없었다. 트리폴리의 백작 레몽이 왕에게 간했다. “폐하, 사막전엔 기동성이 뛰어난 살라딘 군대가 유리합니다. 그 힘은 우리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사막을 가로질러 공격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입니다”

야심과 허욕에 사로잡혀 고집불통인 뤼지냥은 트리폴리 백작의 충언을 묵살하고 사막횡단의 진격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얼마 못 가 갈증으로 탈진, 전열이 흐트러졌다. 결국 살라딘군의 기습으로 1만5000여 명의 십자군은 전멸했다. 이 치욕의 ‘하틴의 뿔 전투’ 완패로 십자군은 자멸하고 예루살렘은 이슬람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역사 속에 뤼지냥처럼 자만과 아집, 독선으로 파멸한 지도자는 수없이 많다. “최고경영자는 내가 틀렸다는 말을 못한다. 이 짧은 말을 못 하게 하는 내면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고경영자도 틀릴 수 있다.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를 인정하고 고치면 된다. 최고 경영자는 비판 받기를 싫어한다. 비판을 곧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직원들은 자신과의 의견충돌 조차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의견충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정확한 의사소통을 못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기 쉽다” ‘최고경영자가 빠지기 쉬운 유혹’의 저자 패트릭 렌시오니가 제시한 최고경영자가 조심해야 할 유혹들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전문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제임스 스키로 전 회장은 “자신이 배운 기술과 이론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전문가를 주의하라”면서 “필요한 것은 아집과 독선이 아니라 사실과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종합하고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개념들을 창의적인 시각에서 솜씨 좋게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급의 임금은 자신의 능력을 다 쓰고, 중급의 임금은 사람들의 힘을 다 쓰며, 상급의 임금은 사람들의 슬기를 다 쓴다” 한비자의 명언이다. 이번 총선은 내로남불, 자화자찬, 아집과 독선으로 나라를 골병들게 한 정권에 대한 따끔한 경종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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