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담고 싶어서
꽃봉오리가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여름마저 가득 담고 싶어서
꽃잎이 활짝 열리기 시작합니다
가을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몰랐기에
꽃잎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그리하여 겨울은 공터가 되는 것이지요
나는 난간을 붙잡고
동물적이고 이성적인 찬바람에도 약해져서
개미 땅굴을 바라봐도 눈물이 흐릅니다
이 조용을 흔들어 깨울 수 없는 날,
눈이 펑펑 쏟아지고 아무도 밖을 나가지 않으니
함박눈이 울타리가 아닐까요?
그러나 저 정도쯤은 우리가 쉽게 넘을 수 있어요
장벽과 장벽이 이어지면 그 위는 평지거든요
함께 가 볼까요?
햇빛이 그늘을 넘어설 필요가 없을 때


<감상> 햇살은 그늘의 영역을 탐하지 않고, 그늘은 햇살 덕분에 자신의 영역을 가진다. 햇살과 그늘은 자기의 운명을 잘 알기에 서로 짜증을 내지 않는다. 나무도 꽃봉오리, 개화, 낙화, 빈 가지일 때를 알아 어떤 장벽을 쌓지 않는다. 한 시기와 장소에 잡착하지 않고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떠나간다. 인간은 계절에 따라 감정이 제각각이고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므로 스스로 울타리에 갇힌다. 수많은 장벽을 만들지 맙시다. 그 장벽에 위에서도 함께 공존하면 평탄한 길이 이어집니다. 햇빛이 그늘을 탐하지 않을 때.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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