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하는 대규모 국책사업 부지 결정을 야바위 놀음으로 진행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 부지 유치 공모 계획 평가 항목과 기준을 공개했다. 평가 항목은 기본 요건 25점, 자치단체 지원 25점, 입지 조건 50점 등이다.

하지만 이런 평가 항목은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만하다. 정부가 장기로드맵을 발표하고 평가 기준을 확정한 지 3일 만에 서둘러 평가항목 기준을 공고한 것도 석연찮은 대목이다. 평가 항목의 지표 선정이나 자치단체 의견 수렴 등의 사전 절차도 없었다. 또한 사전에 이 같은 세부 평가 항목에 대한 배점도 제시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연 온라인 설명회에서도 세부 평가 기준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부지선정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한 것으로 변경이 어렵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깜깜이 공모가 어디 있나.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사업은 국가 예산 8000억 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 1조 원을 들여 2027년까지 방사광가속기와 부속시설을 갖추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이런 국가의 미래 과학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사업을 공정한 평가 절차 없이 진행하는 것은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나 다름 없다.

여기에다 접근성을 기본 요건의 두 배나 되는 50점으로 책정한 것이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다. 6개의 세부 항목에는 시설 접근성과 편이성, 현 자원 활용 가능성, 배후도시 정주 여건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평가 기준이라면 당연히 연구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가까운 후보지가 절대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광주과학기술원이 전국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는 연구원 33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7% 이상이 접근 편이성(8.6%)보다 품질경쟁력과 장비, 인력 확보 등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실제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는 전문가들이 이렇게 평가하고 있는데도 ‘접근성’에 가중치를 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부지의 기본 요건과 주요 평가 항목이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둔 것처럼 의혹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 없다. 이래서야 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신뢰하고 결과에 승복할 수 있겠는가.

방사광가속기는 고속의 빛을 활용해 초미세 세계를 분석하는 장비로 신약 개발이나 미세 로봇 제작 등 기초과학은 물론 응용과학, 생명공학, 정보통신, 나노기술, 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경북 포항시에는 3·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운용되고 있다.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바이오와 반도체, 에너지 등 첨단산업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운용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곳에 지어져야 마땅하다. 정부가 29일까지 유치계획서를 접수, 다음 달 7일 후보지를 결정한다. 입지 선정에는 정치적 고려나 일부 행정가의 아집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오직 국가의 미래과학 발전을 최대한 앞당길 수 있고, 성공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정부는 당장 평가 잣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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