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은 옥빛 품은 동해바다, 왼쪽은 울창한 숲의 향연

강구마을 뒤에서 본 강구항과 붉게 핀 목단꽃이 조화를 이룬다.

영국시인 T.S 엘리엇(Eliot)의 시(詩) ‘황무지(荒蕪地)’ 첫 구절이 생각난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이 잔인한 4월을 연상케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어 ‘걸어서 자연 속으로’의 발걸음을 영덕블루로드 A코스(강구터미널 ~ 해맞이공원)중에서 ‘고불봉 가는길’로 택해 4월 11일과 15일 두 번에 걸쳐 다녀왔다. 코로나여파로 단체 산행을 할 수 없어 내자와 후배부부 넷이서 대게의 고장 강구항에서 강구대게축구장으로 가는 해안우회도로 중간에 차를 주차하고 블루로드 A코스 고불봉 산행 들머리 데크길을 오른다.

코로나19 여파로 인적이 드문 강구항에서 대게를 판매하는 상인들 모습.

A코스의 시작점인 강구터미널을 지나 강구항과 강구마을 뒤쪽을 올라 해안우회도로 건너편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본 강구항이 평화롭고 항 넘어 보이는 삼사해상공원이 지척에 보인다.

고불봉 오르기 직전에 있는 안내판.

고불봉까지의 거리가 7㎞라는 안내판 사이로 숲길이 나 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강구대게축구장에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의 싱싱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봄날이다. 영덕이 축구의 고장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산행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나는 운동시설들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이곳이 지도상 봉화산으로 표기된 곳이다.

강구마을 입구에 세워진 블루로드 안내 표시판.
강구마을 입구에 세워진 블루로드 안내 표시판.

숲길 오른쪽은 동해바다가 멀리 보이고 왼쪽으로는 강구로 흘러드는 오십천 물줄기가 보이는 산등성이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산객을 평탄한 산길로 이끌고 간다. 키 큰 소나무와 떡갈나무 등이 함께 어우러진 숲 속에는 녹색향연이 펼쳐지고 우리지역 가까이에 이렇게 한적하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산길이 있다는 게 마냥 기쁘고 반갑기 그지없다.

지난번에 간 ‘목은사색의 길’에서도 느낀바 있지만 ‘영덕블루로드’ 라면 해안절경을 먼저 떠올릴 것 같은데 이렇게 호젓하고 포근한 숲 속에서 힐링하고 즐길 수 있어 행복한 느낌이 물씬 배어 나온다.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다시 쉼터와 운동시설이 나오는 곳에서 산행 후 처음으로 몇 사람을 만난다. 널찍한 평상에 앉아 가져온 음식들을 맛나게 먹으며 웃는 모습들이 평화롭다. 쉼터를 지나 내려서니 ‘금진구름다리’가 나온다. 영덕읍 금호리와 강구면 금진리를 잇는 도로 위 블루로드 산행길을 위해 다리를 놓았다.

산행 들머리에서 시작하여 이곳까지 2.5㎞ 1시간여가 소요되지만 호젓한 숲길 속으로 느긋하게 즐기며 걷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쉬엄쉬엄 산속에 빠져들었다. 아치형 다리가 C코스 ‘사진구름다리’와 흡사하다. 구름다리를 지나 고불봉 입구까지는 4.5㎞가 남았다.

울창한 솔숲 속으로 시원한 강바람과 바닷바람이 교차하며 부는 한낮의 봄날이 간지럽다. 산행을 오후부터 시작한 관계로 고불봉까지 가는 산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1차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뒤돌아 내려섰다.

4월 15일, 총선투표 날이지만 사전투표를 한 덕에 조금 이른 시간에 금진구름다리 아래에서 다시 산행을 시작하였다.

소나무와 떡갈나무 등이 숲 터널을 이루는 사이로 난 산길에 햇볕이 따사롭게 비친다.

블루로드 A코스 ‘빛과 바람의 길’ 전 구간 안내판에도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이 코스는 강구터미널에서 시작하여 강구항과 강구마을 뒤로 올라 해안우회도로에서 산행구간이 이어진다. 평탄하고 업다운이 없는 숲 속 오솔길 따라 금진구름다리까지 간다. 고불봉(高不峯 235m)까지는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오르내리는 산행이라 지루하지 않고 오십천 강바람과 영덕해안의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영덕블루로드만이 누릴 수 있는 멋진 코스가 이곳에 있다. 고불봉에서 풍력발전단지 쪽으로 난 임도와 포장도로(7.5㎞)를 지루하게 걸어서 해맞이캠핑장까지 내려가 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풍력단지헬기장을 거쳐 해맞이공원까지 가면 총 길이 17.5㎞ A코스 전 구간이 끝난다.

영덕이 복숭아의 고장임을 산에서 알 수 있다. 산복숭아꽃이 붉게 피어있다.

곳곳에 세워진 안내판과 블루로드, 해파랑길 리본들이 처음 오는 산꾼들에게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고 있어 길 잃어버릴 일 없이 쉽게 갈 수 있고 양쪽으로 영덕읍 시내와 바다가 심심찮게 눈을 즐겁게 한다.

군데군데 설치된 쉼터에는 탁자와 평상 등이 널찍하게 만들어져 피곤할 틈도 없다. ‘해맞이 등산로 중 동해바다가 잘 보이는 봉우리’라는 글자와 전화번호가 적힌 안내판이 산객들을 웃게 만든다. 별로 전망이 좋지 않은데 잘 보인다고 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고불봉 정상에 놓인 자그마한 돌탑을 둘러사고 있는 솔숲 모습.

고불봉이 1㎞ 남짓 남은 곳에 운동시설과 쉼터가 있어 숨을 고르며 사방을 둘러본다. 멀리 풍력단지의 하얀 바람개비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고 고불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자그마한 돌을 쌓아 산객을 반긴다. 고불봉 정상이 온통 꽃밭이다. 높이가 235m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이 곳에서는 제일 높은 봉우리로 사위가 훤히 트여 조망이 일품이다. 정상석 주변에 유턴하라는 표식이 세워져 새삼스럽다. 블루로드 A코스를 완주하려면 고불봉에서 다시 내려가 풍력발전단지 쪽으로 가야 한다는 안내표시지만 산에서 유턴 표시가 있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정상주변에는 온통 산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정자가 놓여 있어 아름다운 그림이 만들어진다. 영덕 읍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반대편 풍력단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며 오십천 물줄기가 굽이쳐 내리는 도심 너머로 먼 산들이 아스라이 어깨를 맞대고 고불봉을 바라본다.

정상 표지석 옆에는 조선조 최고의 문인이요 문신이었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영덕으로 귀양 와서 고불봉을 보고 지었다는 시(詩)를 옮겨놓은 안내판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고불봉 정상에 세워진 고산 윤선도의 시(詩).

제목이 ‘고불봉(高不峰)’이며 내용은 이러하다.

고불이란 봉우리 이름이 이상하다 하지만
여러 봉우리 중 최고로 뛰어 난 봉우리네
어디에 쓰일려고 구름, 달 사이로 높이 솟았나
때가 되면, 홀로 흐르는 받들 기둥이 될 것이네.


고불봉에 얽힌 재미난 얘기를 잘 표현한 글로써 예부터 영덕에서 내려오는 ‘영덕 8경’중의 하나인 ‘불봉조운(佛峰朝雲)’에 해당하는 봉우리로 고불(高不)또는 고불(高佛)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렇듯 우뚝 솟은 봉우리에 구름이 걸리고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즈음에 보이는 봉우리가 최고의 풍광을 만든다는 전언에 영덕의 기품이 여기 살아 있을 것 같다. 정자에서 점심을 마치고 360° 조망을 다시 한 번 즐기고 화원 속의 고불봉을 내려선다.

여기까지가 A코스 ‘빛과 바람의길’중 오롯이 산행으로 탐방하는 블루로드 산행코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코스다, 남은 구간은 임도와 포장도로를 따라 풍력발전단지로 내려가 테마공원과 신재생에너지전시관 등을 둘러보고 창포말등대가 대게찍게발로 환영하는 해맞이공원으로 가는 코스가 남았다.

강바람과 바닷바람이 넘나드는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 이제 바다의 품으로 내려앉는 일만 남았다.

금진구름다리를 밑에서 본 모습.

남은 구간은 다음기회로 남겨두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다시 금진구름다리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오를 때는 무심코 지난 산길 옆에 진기한 연리목(連理木)이 우리를 반긴다. 키가 큰 소나무와 참나무가 허리를 감싸 안으며 사랑을 나누는 ‘사랑 나무’가 된 블루로드A코스 설명에도 없는 진기한 연리목을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강구항에서 금진구름다리를 지나 고불봉까지 왕복 20㎞의 산행이 힘들지 않음은 ‘빛과 바람의 길’에 걸 맞은 숲길과 산등성이를 타고 내리는 바람이 있고 기품있는 고불봉이 자리하고 있어 더 좋았다. 영덕 대게의 참맛과 축구를 좋아하는 영덕사람들의 열정이 묻어나는 영덕의 진면목을 보면서 아름답고 포근한 산행길이라 더욱 행복했다. 여기서 ‘걸어서 자연 속으로’ 블루로드 산행편을 접으며 푸른 5월의 싱그러운 날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자 한다. 글·사진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회장

글·사진=김유복 경북산악연맹 회장
글·사진=김유복 경북산악연맹 회장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회장
온라인뉴스팀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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