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환 변호사
금태환 변호사

한국이 코로나19 극복에 성공적이었다고 하여 세계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 한국의 의료체계가 소위 선진국보다 낫기 때문이리라.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선진국이라는 나라도 많은 허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외국을 다녀보면 한국도 좀 바뀌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며칠 전 흥해에 있는 식당에 국수를 먹으러 갔다. 거기서의 대화 내용. “아주머니 푹 익혀주세요.” “뭐라고요.” “시간이 많으니 푹 삼아 주세요.”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해요.” 얼굴 표정도 좋지 않았다. 쓸데없는 참견을 했나 싶어 국수를 먹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본에서의 일이다. 번화가에 있는 수리점에 시계를 수리하러 갔는데 거기서는 못 고치니 조금 떨어진 데 가보라면서 주소와 약도를 가르쳐 주었다. 대강 설명을 듣고 나왔으나 방향도 잡을 수 없었다. 더구나 저녁이라 번쩍이는 선전판만으로는 주위를 가늠할 수 없었다. 데이터를 아끼려고 무제한으로 해오지도 않았으니 구글도 볼 수 없었다. 막막해서 포기하나 생각하는데 마침 젊은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주소와 약도를 내미니 자기를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퇴근방향이 그 방향이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가자는 것이었다. 한참을 갔다. 이제는 내가 괜찮다고 하면서 내가 찾아갈 수 있다고 하니까 다 왔다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아가씨는 회사원인데 지하철로 반대방향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20분을 걸어갔다. 괜히 주소를 물었나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상해야 하나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나를 주소에 적힌 건물 앞에 데려다주고는 그제서야 급히 가야 된다면서 총총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고맙다는 인사를 수도 없이 했다. 물론 시계도 깨끗하게 고쳤다.

필자가 국민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는 건물에 들어갈 때 문 잡아주기. 연이어 들어가는 경우 앞선 사람이 문을 놓아버리면 반작용에 의해 뒷사람이 문에 부딪힐 수도 있고 열기가 불편할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들어갈 때 뒤따라오는 뒷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한번은 서울대학 도서관에서 여자직원이 내가 뒤따라가는데 문을 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놓아 버리길래 불러 세워서 주제넘은 참견을 한 적이 있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바통 터치하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어떤 얌체는 내가 문을 잡아주니까 자기만 쏙 빠져나가고 나는 그대로 잡게 하기도 하였다.

또 하나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근처에 있으면 사람을 먼저 보내기. 한국에서는 대부분 차가 우선한다. 사람이 지나가기 전에 차가 먼저 지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차가 횡단보도 근처에 오고 옆에 사람이 지나갈 듯하면 차가 정지해서 사람을 보내주고 출발하면 얼마나 안전할까. 한국 사회가 경쟁사회인 만큼 1분 1초라도 빨리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 때문일까. 너보다는 내가 잘 났기 때문에 내가 우선해야 된다는 생각일까. 1분의 여유만 가진다면 사람을 먼저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빨리빨리 남보다 먼저 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만큼 더 각박하다. 그래도 1분의 여유는 있었음 좋겠다. 1분 때문에 큰 손해는 없으리라. 정치구호 이전에 사람이 차보다 먼저라는 생각이 자리 잡아야 한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택시인 줄 알지만 사람이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해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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