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코로나19가 한결 수그러진 뒤 기다렸다는 듯이 너도나도 바깥으로 나갑니다. 특히 지난 연휴 기간에는 대단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면 닿을 서울-춘천이 다섯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지방은 좀 사정이 나았습니다. 대구-마산. 대구-부산, 대구-경주, 대구-포항 나들이에는 차가 좀 밀렸을 뿐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이 다녀온 소감들을 전했습니다). 저도 두어 번 가까운 야외로 나가 가족 친지들과 식사도 하고 차도 마셨습니다. 오랜만에 차량들이 줄지어 도시 바깥으로, 산과 들과 바다를 향해 나가는 것을 보며 자연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라고 자문을 했습니다. 온통 ‘생활의 필요’로만 둘러싸인 도시의 무감각한 몰(沒)풍경을 벗어나 도시가 주지 못하는, 새로운 활력과 설렘을 주는, ‘자연의 에로스’, 자연 풍경을 찾아 떠나는 행렬들이었습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거대한 하나의 에로스입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생긴 것이 없습니다. 자연이라는 싱싱한 풍경 속의 모든 것들은 하나의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그 사랑의 끈으로 묶이게 됩니다. 당연히 그 품에 안겨 있다 보면 생명의 기운이 새롭게 충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뿐만이 아닙니다. 어디서나 풍경은 풍부한 감성의 보고입니다. 장소에 따라서, 그것이 주는 심미적 인상에 따라서, 우리 안에 있는 오래 발효된 것들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합니다. 『인간의 굴레에서』(서머싯 몸)라는 소설에서 어린 주인공이 ‘풍경’에 눈뜨는 장면이 있어 한 번 옮겨 봅니다.

... (필립은) 그럴 때면 교외로 혼자 산책을 나갔다. 푸른 들판 사이를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강둑에는 가지를 친 나무들이 양쪽에 늘어서 있었는데 이 둑을 따라 거니노라면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피곤해지면 풀밭에 엎드려 피라미와 올챙이 떼가 재빠르게 헤엄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구내를 어슬렁거리며 거니는 것도 즐거웠다. 중앙의 풀밭에서는 여름철에 네트 연습을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보통 때는 조용했다. 이따금 학생들이 팔짱을 끼고 거닐거나, 공부벌레 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외워대며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느릅나무 숲에는 당까마귀 떼가 살고 있어 사방에 온통 우울한 새 울음이 가득했다. 한쪽 편에는 대성당이 서 있는데 건물 가운데로 뾰족탑이 높이 솟아 있었다. 필립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대성당 건물을 바라볼 때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어떤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자습실을 배당받았을 때(빈민가가 내다보이는 네모진 작은 방으로, 네 명이 같이 사용했다), 필립은 대성당 풍경을 찍은 사진을 한 장 사다가 책상 앞에 붙여놓았다. 그러는 사이 사학년 교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창문 밖으로 손질이 잘된 오래된 잔디밭과 잎이 무성한 멋진 나무들이 보였다. 그걸 내다보고 있노라면, 아픔인지 기쁨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야릇한 느낌이 그를 사로잡았다. 심미적 감정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서머싯 몸(송무), 『인간의 굴레에서』]

사춘기에 접어든 필립은 자신의 내면을 채워갈 반성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혼자서 강둑을 거닐며 물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학교 주변의 풀밭과 숲에도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출입하곤 합니다. 대성당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눈뜨기도 하고, 평화로운 정원 풍경에 넋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풍경이 심미적 체험을 선사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비로소 건강한 어른이 되는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구는 밤이 스승이라고 했습니다만 저는 풍경이 선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올 때 나도 성숙합니다. 상처도 그리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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