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인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감상> 서울특별시 개봉동, 중심에서 밀려난 장미는 제 몸에서 시간을 일으키면서 흔들리는 존재이다. 장미는 제 혼자 길을 가지만, 밖에 비켜서서 길을 만드는 존재이다. 중심에 선 자들은 주변을 살리지 못하지만,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은 중심을 먹여 살린다. 정작 중심에서 사는 자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개봉동 집들의 대문, 불편한 장미일지라도 두르려 보라. 그러면 닫힌 문도, 닫힌 꽃봉오리도 활짝 열릴 것이다. 우리네 삶도 장미처럼 한 빛깔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제 길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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