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 케인 변호사
하윤 케인 변호사

파슬은 1984년 미국 텍사스의 한 대학생이 동아시아에서 시계를 수입하며 시작한 회사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가방이나 지갑 등 가죽 제품까지 판매를 확장했으며 최근에는 스마트 워치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에도 진출해있으며 다양한 시계와 튼튼한 가죽 제품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푸마 등 타 브랜드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제품 제작을 진행하기도 한다.

다른 브랜드처럼 파슬도 모든 부품을 직접 제작하지는 않는다. 가방이나 지갑 등에 사용되는 자석 잠금장치의 경우, 2002년부터 로매그(Romag Fasteners, Inc.)가 부품을 공급했다. 2010년, 로매그 측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파슬 핸드백에 가짜 로매그 잠금장치가 사용된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파슬에 특허와 상표 침해 소송을 건다.

로매그는 파슬이 로매그와 부품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있는 비승인 공장에서 제작한 제품을 사용했다며 이는 파슬의 상표 침해라고 주장했다. 중국 비승인 공장에서 제작한 제품은 로매그의 특허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제작 제품에 ‘ROMAG’라고 적혀있는 부분까지 정품을 본 땄는데, 로매그의 이름이 적힌 부분이 상표 침해에 해당한다.

2014년 나온 일심에서 배심원은 부당이득을 방지하기 위해 파슬이 로매그에 손해배상 십오만육천 달러를 지불하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의 판매 수익금 670만 달러도 로매그에 반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반면 법원은 이익금을 모두 반환하기 위해서는 파슬이 고의적으로 로매그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했어야 한다고 했다. 상표법이 ‘고의성’을 필수 요건으로 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1심은 파슬이 잘못을 하긴 했지만 ‘고의’적으로 로매그 상표를 침해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로매그가 670만 달러를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2심도 동일한 결과였다.

로매그는 고의적인 상표 침해가 아니어도 파슬이 이익금을 반환해야한다며 케이스를 대법원으로 가져갔다. 대법원은 하급 법원들과 법률 해석을 달리했다. 상표 희석 (dilution) 케이스에서 이익 반환 금액을 산정할 때는 ‘고의성’이 필수 요소지만 로매그 케이스가 해당하는 상표 침해 (infringement) 에서는 고의성이 필수라고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파슬이 일부러 로매그의 상표를 침해했는지 실수로 상표 침해를 했는지와 무관하게, 파슬은 짝퉁 로매그를 사용한 제품 수익금을 로매그에게 반환하게 됐다.

4월 23일에 나온 이 판례로 인해 상표권자는 앞으로 기존보다 수월하게 이익 환수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상대방의 의도를 입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할 일이 줄었으니 상표권자가 상표 침해 소송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높아졌다. 제품의 작은 부품까지도 권리관계를 확인해야 하니 영세 업자에게는 더 부담이 되는 판례이지만 하급 법원에서 배상액을 적절히 조율할 것을 기대해본다.

상표권자 클라이언트를 보호하기 위해 경고장이나 소장을 보내는 경우, 상당 경우 상표 침해자는 ‘상표를 침해할 의도는 없었습니다’라고 얘기한다. 실수였고 몰랐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겠냐는 이야기다. 하지만 ‘몰랐다’는 사실은 로매그 판례 전후 모두에서 전혀 방패가 되지 않는다.

제품 판매자나 제조업자 혹은 라이센스권자라면 제품 판매 전 항상 상표나 특허, 저작권 등 권리관계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소송을 당한 후 해결하는 것보다 소송을 당하지 않게 준비하는 것이 보다 경제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개발한 제품이나 이름이 아니라면 항상 권리 체크를 하는 것이 안전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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