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손재주로 만드는 전통 화살 제작 '자신과의 싸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4호 궁시장 보유자 김병욱 명인이 포항 북구 학산동 공방에서 자신의 만든 전통 화살을 활 시위에 넣어 당기고 있다. 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화살은 명중률이 생명입니다. 그 핵심은 굽은데 없이 곧게 만들고 이를 오래 유지 하는데 있어요.”

우리나라는 활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민족이다.

우리 민족을 일컫는 동이(東夷)족이라는 명칭도, ‘활을 들고 있는 이’를 뜻한다고 알려지며 활을 잘 다루는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멀리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에서부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가까이는 올림픽을 휩쓰는 양궁까지….

선천적으로 활과 밀접한 ‘DNA’에 새겨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

지금도 전국 400여 곳의 궁도장에서 10만여 국궁 동호인 궁사들이 과녁을 정조준하고 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4호 궁시장 보유자 김병욱 장인의 포항시 북구 학산동 자택 정문에는 그가 궁시장 임을 알리는 현판이 걸려 있다.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포항시 북구 학산동 화살제작공방과 전통 활·화살 전시관을 겸한 자택에서 전통 화살 맥을 잇는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44호 궁시장 보유자(인간문화재)’ 김병욱(59) 명인을 만났다.

‘궁시장(弓矢匠)’이란 활과 화살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장인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이 중 궁사의 주문에 따라 전통 대나무 화살을 만드는 시장(矢匠), 즉 ‘화살 장인’이다.

김 명인이 태어난 포항 연일읍에는 일찍이 대나무로 담뱃대나 낚싯대, 화살 등을 만드는 ‘죽(竹)세공 단지’가 있었다고 한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과 어려운 가정 형편에 자연스레 이곳에서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

대나무를 곧게 만드는 공정인 ‘교죽(矯竹)’에 남달리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를 눈여겨본 스승,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시장 보유자 김종국 선생에 사사해 1979년부터 전통 화살 제작 기술을 배웠다. 1981년 죽시 공방을 연지 벌써 40년, 이러한 긴 인생 여정을 불과 2시간여 만에 들으려는 취재 상황이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전통 화살 제작에는 대체로 ‘백 회가 넘는 각 공정에 천 번이 넘는 손길’이 간다고 했다.

숯불에 구워서 대나무를 곧게 하는 교죽 작업은 물론 어교(漁膠)로 꿩 깃을 붙이고, 쇠 심줄로 고정하는 각기 작업에는 무수한 손길과 장인의 집중도가 필요하다.

교죽 능력이 탁월했던 그는 화살 초벌·재벌과 마디 조림, 사포질 등을 수년 간 배우고 조금 일찍 혼자 독립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깃, 오늬(활의 화살끝에서 활줄을 받는 V형으로 돼 있는 부분) 등 여타 공정 중요성과 제작 비결을 익히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4호 궁시장 보유자 김병욱 명인이 포항 북구 학산동 공방에서 전통 화살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있다.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예를 들어 깃을 화살에 붙일 때는 손톱을 짧게 자르고, 손가락을 스치듯 간격을 두고 해야 합니다. 다른 장인이 쉽사리 가르쳐 주길 만무할 노하우를 시행착오와 시도 끝에 하나씩 몸으로 익혔죠”라고 말하는 얼굴에서 고생한 세월이 스쳐 지나가 보였다.

화살 만드는 과정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라 술을 극히 자제하고 ‘매일 저녁 10시 취침, 8시 작업 시작’을 평생 지키고 있다. 김 명인은 ‘전통 활쏘기’도 몇 번 해봤지만 이내 그만뒀다고 한다.

활을 팽팽히 당기며 날아간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는 재미와 중독성이 매우 커 자칫 그의 일에 방해가 될까봐서다.

혼자 하는 작업이고, 남들이 보지 않아도 항상 행동거지를 삼가며, 외로운 직업을 ‘라디오 방송 청취’를 친구 삼아 함께하고 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4호 궁시장 보유자 김병욱 명인이 포항 북구 학산동 공방에서 자신이 만든 전통 화살을 들어 보이고 있다.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사부님께서는 ‘궁둥이가 무거워야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집중력을 필요한 작업 전에는 컨디션 조절 등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고도 하셨어요.”

숙련된 장인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화살은 최대 7개 가량으로 많지 않다.

어느 정도 실력을 연마한 후에도 ‘화살을 쏘면 몇 초 만에 과녁에 도달하는지’ 등 그 특성을 연구하며 끝없이 공부하고 있다.

기성품이 아니라 맞춤형 제작인 만큼 궁사의 체격과 팔심에 맞게 화살의 길이와 무게 등 조절에 특히 더 노력하고 있다.

‘백발백중’이 모든 궁사의 목표인 만큼, 과녁에 모두 명중할 만큼 좋은 곧은 화살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꿈이라고 밝혔다.

또 문헌 및 천마총 고분에서 화살촉만 발견되는 ‘옛 화살을 복원하는 것’도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도 했다.

그의 화살은 직선도가 높고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려는 대나무의 성질을 잘 다스려) 이를 오랫동안 유지, 명중률이 매우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그의 화살 제작 능력을 인정받아 1개당 3만5000원인 20개 세트가 70만 원에 팔린다. 지금 주문해도 꽤 오랜 시간 지나야 받을 수 있을 만큼 인기 또한 높다고 귀띔했다.

현존하는 수준에 오른 화살 장인이 전국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 만큼 앞으로 가치는 더 인정받을 듯했다.

하지만 대나무, 어교 등 재료비 또한 1개 당 만원 가량으로 만만찮고, 모두 집 안에서 혼자 하는 수작업인 만큼 큰 벌이는 안된다.

그 역시 젊은 시절 ‘이사 일’ 등 다른 부업도 많이 했다고 한다. 특히 내조와 함께 무수한 고생을 하며 장인의 길을 계속 걷게 해준 동갑내기 아내 ‘김영란’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녀 또한 ‘절반은 명인이자 장인’이라고 미안함을 표현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4호 궁시장 보유자 김병욱 명인이 포항 북구 학산동 공방에서 전통 화살의 재료인 꿩 깃털을 들어보이고 있다.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처음 화살을 만들 때는 기술을 천시해 ‘하인·노비’처럼 낮게 대할 때도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국궁대회서 우승하면 고맙다고 선물을 해 주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장인’으로 인정받는 풍토가 자라나고 있다”고 웃었다.

전통 활과 화살에 대한 김 명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4호 궁시장 보유자 김병욱 명인이 포항 북구 학산동 공방에서 전통 화살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일본 등 다른 나라 활과 화살은 세밀한 손재주로 만든 우수한 우리 것과 비교가 되지 않아요. 국궁이 빼어난 양궁 실력의 모태가 되며 알다시피 동이족은 활을 잘 쏘는 민족이죠. 이순신 장국의 거북선도 활은 우리가 유리하지만, 근접전은 일본도를 지닌 일본이 유리하기에 대응코자 고안한 겁니다”고 우리 활 예찬론을 펼쳤다.

김 명인은 “우리 화살을 만든다는 사명감과 성취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계속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며 “제 살아생전 반드시 (좋은 제자를 키워) 계승해 맥을 잇고, 전통을 유지·보전하겠다”고 굳은 다짐을 피력했다. 이어 “초등학교 등을 찾아 체험 교실을 열며 우리 활과 화살의 소중함을 널리 일깨워주려고 노력한다”며 “포항 국제불빛축제 같은 큰 행사에도 전통 화살을 홍보할 부스를 만들어 준다면 전국의 관광객은 물론 세계인도 더 많이 접할 수 있고 알릴 수 있어 좋을 것”이라는 소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소원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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