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원태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1600년, 영국 동인도 회사(English East India Company)는 군주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영국과 인도 및 아시아 간의 무역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당시 인도를 통치하던 무굴 제국의 비호를 받은 동인도 회사는 향신료, 직물 등을 거래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김으로써 인도에서의 경제적 및 정치적 세력을 점점 키워나갔다. ‘세포이(sepoy)’라는 인도인들로 구성된 군대를 통솔한 동인도 회사는 인도 시장을 호심탐탐 노리던 프랑스 세력을 1757년 플라시(Plassey) 전투에서 물리침으로써 인도 북동부 벵갈(Bengal) 지역의 사실상의 통치권을 인정받았고, 이를 통해 인도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서 부패와 약탈행위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젊은 동인도 회사 직원들이 인도에서 몇 년 발령근무 후 엄청난 부(富)를 가지고 런던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본 영국인들은 분노하였고, 이에 동인도 회사의 부정부패와 악습을 조사하기 위한 의회 청문회가 1773년에 열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공금 유용과 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청문회 앞에 끌려 나온 플라시 전투의 영웅 로버트 클라이브(Robert Clive)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다른 동인도회사 사람들만큼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 거절했다고 주장하며 ‘위원장님, 제 스스로의 절제력에 제가 다 놀라자빠질 지경입니다!’라는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명언’을 남기기까지 하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대한민국의 인명피해가 서양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는 사실이 지난 4·15 총선에서 진보여당이 압승을 했다는 데에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사망수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적었을 뿐,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코로나 사태로 유명을 달리한 270여 명의 국민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총 7명의 사망자가 나온 대만이나 4명의 사망자가 나온 홍콩, 심지어 사망자가 전혀 나오지 않은 베트남의 사례 등을 비추어볼 때, 이 270여 명의 사망자 중 우리가 분명히 방지할 수 있었던 죽음도 존재한다. 아무리 그 수가 적다 하더라도 방지할 수 있었던 죽음을 방지하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이 이루어져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우리나라가 지금 전 세계의 모범이 되었다고 정부는 연신연일 자화자찬하기에 바쁘고, 대한민국 방역의 선도성을 지속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의 등교마저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G7 회의에 초청받는 세계 일류 국가가 되었다는 뿌듯함에 취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거스르기 힘든 언론에서는 가족과 친지의 허망한 죽음에 오늘도 울분을 토하는 코로나 유족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잘 대응했다’는 것이 과연 ‘잘 대응했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는가.

‘수도권 감염 확산’과 ‘윤미향 논란’ 등으로 인해 이제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난 4월 29일의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당시 건설업체의 현장 안전책임 담당자는 ‘안전 수칙은 다 지킨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솔직히 건설 현장에서 그런 것 다 지키는 곳이 어디 있느냐, 다들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회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분명히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원칙과 기준이 언제까지 남이 지키는 만큼만 지키거나 조금 더 지키기만 하면 되는 ‘상대적인’ 원칙과 기준으로 변질되어 대한민국의 번창과 번영을 저해해야 하는가. ‘절대적인’ 법과 ‘보편적인’ 윤리를 무시했던 영국 동인도 회사의 끝없는 욕심과 야망이 1857년의 ‘세포이의 항쟁’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회사는 해체되고 말았다. 우리는 언제 ‘쟤보다는 잘했어’가 아닌, 그냥 ‘잘했어’라는 평가를 추구하는 ‘진정한’ 세계 일류 국가를 경험하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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