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재미있게 본 네 편의 영화 이야기입니다. <뜨거운 것이 좋아>(권칠인, 2008), <취화선>(임권택, 2002), <검우강호>(소조빈, 2010), <리틀 포레스트>(모리 준이치, 2014)가 그것입니다. 모두 오래전에 본 것들입니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제 영화 취향의 맹점(盲點)을 확실하게 보여준 영화입니다. 평소에 잘 보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무언가 제 안에서 호응하는 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유료로 보라고 했다면 절대로 안 볼 영화였는데 곰 TV 무료영화여서 우연히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참, 위의 네 편의 영화가 어떤 공분모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이 네 편의 영화는 모두 책상 위에서 본 것이라는 점이 유일한 공통점입니다. 주제나 소재, 취향이나 유행, 기법이나 작가의식 등등 모든 면에서 각양각색의 영화들입니다. 심지어는 국적도 다 다릅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영화들입니다. 그러니 컴퓨터 화면으로 본 것 이외에는 한데 묶일 이유가 별로 없는 영화들입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남녀상열지사를 리얼하게 묘사하는 영화는 그동안 최우선 기피대상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런 영화를 대상으로 한 영화 에세이도 써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뜨거운 것이 좋아>는 제겐 아주 예외적인 영화입니다. 그런데, 별 기대 없이 본, 정말 할 일 없어서 본, 이 영화가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초기의 감정이입 단계에서 약간의 버퍼링(인내심)이 필요했지만 곧 몰입이 되었습니다. 에로티즘을 전경화해서 세 여자의 정체성 서사를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에로티즘은 여자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치(精緻)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중년의 홀로 된 어머니, 성년기의 이모, 청소년기의 딸, 이 세 사람이 각자 추구하는 사랑이 일견 다르지만 결국은 다 같은 것이었습니다. 소년기 동성애, 젊은 날의 사랑과 야망, 기약 없는 중년의 불꽃놀이(불장난 아님)가 결국은 우리 안에 있는 에로티즘들의 진면목, 다면적 정체성의 실상이었습니다. 가끔씩 불쑥불쑥 현실의 기억들이 영화에 개입해서 몰입의 연결을 끊는 일이 몇 번 있기는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예쁜 영화였습니다. 이미숙, 김민희, 안소희 세 명의 여배우들도 보기 좋았습니다. 연기 안에서 예쁜 배우가 진짜 예쁜 배우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취화선>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최민식 배우의 열연과 임권택 감독의 예술적 정열이 콜라보를 이루면서 한국영화 최대의 걸작으로 탄생한 작품입니다. 오원은 호방한 필묵법과 정교한 묘사력으로 19세기 말의 조선화단을 뒤흔든 화가였습니다. 그의 오원(吾園)이란 아호는 100년 앞선 조선최고의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와 혜원(蕙園) 신윤복처럼, “나도[吾] 원(園)이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고아로 자라 어려서부터 남의집살이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그림을 배운 오원은 화재(畵才)에 뛰어났고 술과 색을 몹시 탐했다고 전합니다. 영화는 탁월한 영상미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한 폭의 대단한 그림이었습니다. 미(美)든 색(色)이든, 악(樂)이든 화(畵)든, 오기(傲氣)든 절망(絶望)이든, 무엇이든 지상에 내려온 그것들의 지극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화면 곳곳에서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지극한 것들에 대한 예술적 헌정(獻呈)는 어디서나 누선(淚腺)을 자극하는 법입니다. 이 영화도 그랬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코끝이 찡할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입화자소(入火自燒·불 속에 들어가 자신을 태움)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오원이 도공(陶工)을 찾아가 신분을 감추고 그의 작업을 돕다가(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다가) 끝내 불구덩이 속으로 자기 몸을 집어넣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지금도 제 책상 위에 걸려 있는 ‘입화자소(入火自燒)’를 그렇게 영화 속에서 상봉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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