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폭염이 맹렬한 팔월은 고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달이기도 하다. 일인 통치를 추구한 전임자와 달리 온건한 정치를 펼쳤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로마의 집정관 카이사르가 암살된다. 그의 후계자로 지목된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정적인 안토니우스를 격파하고 제국의 권력을 장악한다.

단독 집권이 아닌 공화정 복귀를 선언한 그에게 원로원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내린다. ‘존엄한 자’라는 의미였다. 훗날 율리우스력 8월은 이를 따서 ‘아우구스투스의 달’로 명명됐고, 오늘날 그레고리력에는 ‘August’로 표기한다.

팍스 로마노로 불린 로마 제국도 저출산 문제로 고민했다. 로마의 상류층은 그라쿠스 형제들 어머니처럼 자녀를 10명이나 두는 집안도 많았다. 한데 기원전 1세기 말엽부터 자식을 적게 갖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국가적 악재로 대두됐다. 이에 대응하고자 아우구스투스는 두 개의 율리우스 법률을 시행한다. 그중 하나가 ‘정식 혼인에 관한 법’이다.

미혼 남녀는 세제상 독신의 불이익을 주었고, 자녀가 없는 과부는 1년 안에 재혼하지 않을 경우 독신과 똑같이 취급했다. 또한 노인과 소녀의 결합 같은 ‘장려되지 않는 혼인’을 명시했다. 혼자 사는 여성에게 물리는 세금은 결혼해 세 번째 아이를 낳아야만 면제됐다.

소생이 없는 50세 이상 여자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소유 재산도 다른 이에게 양도하도록 만들었다. 공직자 임명 시에는 아들딸 있는 후보자를 우대하였다. 당시 최고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자손이 없었다. 그가 속주 총독으로 선출되지 못한 결격 사유라 여기는 학자도 있다. 후세를 낳아 키움으로써 나라에 봉사하지 않은, 소위 국가에 대한 의무를 이행치 않았다는 이유였다. 여성에게 책임을 미룬 다소 불공평한 조치이나 제국의 고뇌가 역력하다.

작금 한국이 당면한 최고의 리스크는 무엇일까. 언젠가 경제학자 대상 설문 조사 결과다.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대표되는 인구 구조가 으뜸으로 뽑혔다. 그다음은 부익부 빈익빈 고착화와 신분 상승 사다리 약화로 상징되는 사회 구조였다.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도 사회 지표를 보면 확연해진다. 출산율은 0.92명으로 2년 연속 1명 미만을 기록했고, 혼인 건수는 8년째 연이어 감소 추세다.

합계 출산율은 각자의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다. 우리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그 배경으로 혼인의 심각한 감소가 꼽힌다. 기원전 고대 로마가 직면했던 애로를 21세기 한국이 맞닥뜨린 셈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나 할까.

하버드대 사회학자 크리스타키스는 인구 구조 변화를 네 과정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출생률과 사망률 공히 높아지는 단계, 둘째는 사망률만 줄어드는 단계, 셋째는 출생률이 떨어지는 단계, 마지막으로 출생률과 사망률 모두 낮아지는 단계다. 서구 사회는 이런 경로가 100년 이상 걸렸으나 한국은 불과 40년 만에 진입한 상황이다.

제일 중요한 저출산 원인은 어떤 연유로든 결혼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해서 혼례를 올리게 만들면 저출산 문제가 일부나마 해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계상 수치도 그러하다. 일단 결혼한 부부는 대부분 아기를 가진다. 회임의 전제 조건이라 여기는 탓이다.

선진국은 고학력 중심으로 출산율이 올라가는 모양새다. 이에 대한 유력한 설명이 양성 평등의 원리다. 자아실현을 도모하는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다가 남녀평등 정신이 확산되면서, 고용 기회 확대는 출산율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요컨대 성 역할 차이로 인한 불편함 해소가 관건이다. 호주의 조부모 아이 돌봄 수당, 스타벅스의 리턴맘 제도, 남성 육아 휴직 활성화, 그리고 프랑스의 혼외 출생아 정책은 적극 벤치마킹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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